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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열풍’에 공자는 더 슬프다 ①

기사승인 2010.02.04  12: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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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孔狗)라고 할 땐 언제고…” 공자탄생 기념행사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을 바라보는 공자상이 서글퍼 보인다. (Getty Images)

“흘러가는 것이 저 물과 같아 밤낮을 쉬지 않는 구나!” 2천여 년 전 공자는 냇가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흘러 2010년, 중국은 ‘공자 열풍’ 속에 있다. 세계 각지에 ‘공자학원’이 설치되고 있고,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영화 ‘공자’도 개봉했다. ‘공자’ 일색에 중국이 떠들썩하다. 하지만 정작 유구한 유교문화는 없고, 단지 정치적인 ‘조화’를 꿈꾸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야욕만 엿보일 뿐이다. 만약 공자의 영혼이 하늘에 있다면, 인간 세상의 ‘공자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40년 전 ‘공자 타도 열풍’ 

40년 전 중국에서 발생한 ‘공자열풍’은 한차례 재난이었다. 중국인들에게 2천여 년 동안 가장 존경받는 성현이었던 공자는 “복고광(復古狂), 정치 사기꾼, 백성을 가장 기만하고 억압한 자”로 불렸다.

1966년 11월 베이징 사범대학의 조반파 두목 탄허우란(譚厚蘭)은 중앙문화혁명 소조의 명의로 200여 명을 이끌고 산둥성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점(孔家店)’을 찾아가 파괴했다. 그는 현지 조반파와 연합해 철저하게 공자점을 파괴하는 ‘혁명조반연락소’를 만들고 공자점을 철저히 파괴하는 만인대회를 소집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라는 비석을 부쉈다.

이들은 취푸에서 29일 동안 2700여 권의 고서와 900여 점의 각종 서화(書畵)를 불태웠는데, 이중에는 국가 1급 보호문물 70여 건 및 1700여 권의 서적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파괴한 문물 중에는 공자의 묘비를 포함한 1천여 개의 역대 비석 외에도 공자묘(孔廟)와 공자(孔子)의 직계 장자와 장손이 사는 저택 공부(孔府), 공림(孔林), 서국(書國) 옛터를 파괴했다.

또, 천보다(陳伯達)의 비준을 거쳐 공자묘를 갈아엎고, 공자묘를 지키던 76대 후손 쿵링이(孔令貽)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 비판했다. 당시 유가 경전만을 연구하던 저우위퉁(周予同) 교수는 끌려나와 자신의 손으로 공자의 무덤을 파헤쳐야 했다. 현지 각급 지도자, 간부 및 1962년 ‘공자토론회’에 참가했던 가오짠페이(高贊非) 등의 학자들이 공자상을 들고 조리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은 공산당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문화혁명소조의 직접적인 지시 하에 이루어졌다. 이는 당시 공산당의 정치투쟁과 정치운동의 필요에 의해 취해진 조치였다.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이 공자상을 파괴하고 있다. 이는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문화혁명소조의 지시였다.

정치 선전 구호된 ‘공자’

최근 중공 관영 CCTV가 강력하게 지원하는 ‘백가강단(百家講壇)’이란 프로그램에서 위단(于丹)이 ‘논어’ 열조를 일으켜 돈과 명예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자신이 공자를 연구하는 국학대사(國學大師)임을 자처하는 학자들이 대학 강단과 TV방송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형세와 경제적인 필요에 영합한 일련의 일들이다.

물론 현재 파괴됐던 공자묘와 공자의 위패는 회복됐다. 공자에게 올리는 향도 왕성하게 타오르고 있고, 중공의 각급 고위관리들도 사람들을 따라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물론 이같은 행동도 장쩌민의 ‘삼개대표론’이나 후진타오가 주장하는 ‘과학적 발전관의 지도방침’을 따라 착실히 추진된 일종의 정치 임무에 불과하다.

공자는 각종 영화와 TV 드라마까지 등장하게 됐다. 역설적인 것은 공자를 비판하고 타도했던 중공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공자를 영화로 제작, ‘대하 서사시’로 떠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1월 22일 영화 ‘공자’가 각지에서 상영되기 전 관방에서는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는 한편, 행정명령을 동원해 블록버스터 ‘아바타’ 2D상영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각종 반응을 종합해보면 공자의 흥행은 썩 낙관적이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관중들이 이미 이 영화가 중공이 이용하는 도구임을 직접 지적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산둥성 정부에서는 공자를 널리 알리는 것을 정치임무로 삼아 미리 각 지역 기관과 초중고교 및 기업 공회(公會)에 연락해 ‘조직적인 관람’을 명령했다. 이 때문에 산둥성의 ‘공자’ 좌석점유율은 67%에 도달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공자’의 흥행은 극히 미미하다. 소식통에 따르면 개봉 첫날 상하이는 관람객이 겨우 수백 명에 그쳤고, 쓰촨성의 한 극장에서는 관람객이 겨우 3명에 불과했다.

2편에서 계속

 

샤샤오창(夏小强)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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