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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평화청원’을 아십니까?”

기사승인 2010.04.27  16: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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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당시 중난하이에 모인 파룬궁 수련생들의 모습 (사진=밍후이왕 제공)

“4·25는 나로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날은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모두 정부를 신임했으며, 평화로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날의 의의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덩궈핑(鄧國平)씨는 11년 전 그날을 생각하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상하이 두방社가 베이징에 설립한 합자회사 ‘베이징 두방­다위안비직조유한회사’에 파견나와 있던 그는 1999년 4월25일 아내와 함께 4·25 평화청원에 참가했다. 이틀 전 파룬궁 수련생 45명이 공안국에 의해 체포됐기 때문이었다.

그에 앞서 4월 11일 중공중앙선전기구 소속 허쭤슈(何祚?)는 톈진 교육단과대학 월간지 ‘청소년과학기술박람’에서 “청소년들의 기공 수련에 동의하지 않음”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파룬궁을 왜곡하고 비방했다.

톈진市 수련생들은 잡지사를 찾아가 해당 기사를 정정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시 공안국은 전투병력 300여 명을 파견해 수련생들을 폭행하고 45명을 체포하는 등 과잉 진압했다.

다음은 파룬궁 정보사이트 밍후이왕에 게재된 덩궈핑과의 인터뷰다.
 

-4·25를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서 당시 상황을 말해달라.

당시 수련생들은 상화로움으로 가득했다. 4·25, 그날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라, 파룬궁을 수련해 승화된 수련자들의 경지가 사회에 집단적으로 드러났을 뿐이었다.

1999년 4월25일 오전, 베이징, 톈진, 허베이 등지에서 올라온 만여 명의 수련생들은 베이징 국무원 청원판공실이 위치한 중난하이에 모여 평화적으로 청원했다. 수련생들은 시종일관 질서정연했으며 플래카드도 없었고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중국국무원 주룽지 총리가 수련생들을 공개 접견했다. 수련생들은 톈진에서 체포된 수련생 45명을 석방하고, 자유로운 수련 환경을 보장하며, 수련서적인 전법륜(轉法輪) 출판 허가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날 톈진에서 체포됐던 수련생들은 즉시 석방됐고, 청원을 위해 상경한 수련생들은 저녁 9시 무렵 자진해산했다. 모든 과정이 평화로웠다. 그러나 4·25는 훗날 당시 공산당주석 장쩌민이 파룬궁을 십년 넘도록 탄압하는 구실이 됐다.
 

- 누가 수련생들을 조직하여 중난하이에 모이도록 했나?

사실 우리는 조직이 없다. 그날 모인 몇 만 명은 모두 사방팔방에서 왔고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완전히 자발적인 행동이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하여 사상경지가 승화된 후 나온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예를 들면 그날 나와 아내는 비교적 늦은 시각에 자리(중난하이)를 떠나게 됐는데 어떤 사람도 우리한테 뭘 하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땅에 떨어진 쓰레기와 경찰이 버린 담배꽁초를 깨끗이 주웠다.

우리가 하루 종일 서있는 동안 누구도 서면으로 통지를 하지 않았고 이것저것을 하라고 시키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수련생들은 줄을 서는 등 질서를 지키려고 애썼고 화장실에 가는 횟수도 줄이고자 물을 적게 마셨다.

밤 9시경 중난하이 서쪽 입구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이미 지도자를 만났고 톈진 수련생들이 석방됐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들은 지도자들과 계속 면담할 것이라며 오늘은 모두 돌아가라고 했다.

수련생들은 우리가 좋은 사람이며 사회에 백익무해(百益無害)함을 정부 당국자들도 알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련생들의 마음은 그렇게 순정했고 선했다.

수련생들은 사면팔방에서 와서 서로를 알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서로를 신임했고 중앙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신임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파룬궁 수련생들의 대선대인(大善大忍)은 하늘땅을 감동시켰다’고 보도했다. ‘파룬궁은 규율이 있고 군대보다 더 강하다’고도 했다. 집권자로서 위협과 근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만일,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이렇게 좋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과 정부에 대해서도 모두 이렇게 선의로 가득하다면 통치자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 아닌가? 좋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는가? 그러나 공산당은 두려워하는 쪽을 선택했다.

사당(邪黨) 언론들은 ‘4·25 평화청원’을 고의적으로 왜곡했다. 국민들에게는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지 않으면 사회가 어지러워질 것임을 암시했다. 많은 국민들은 진상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쪽 말만 믿었다.

사실, 공산당은 파룬궁에 대해 똑똑히 알고 있다. 수련생들이 모두 좋은 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박해했을까? ‘구평공산당’이라는 책에서 아주 똑똑히 밝히고 있다. 장쩌민이 질투심 강하고 속좁았다는 점 외에 공산당 자체에 본질적 원인이 있다.

‘구평공산당’에서는 말했다. “파룬궁은 ‘진(眞)’을 제창한다. 진실한 말을 하고 진실한 일을 함을 포함한다.” 그러나 중공은 내내 거짓말로 국민을 세뇌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말한다면, 중공은 소련에 의해 생겨났고 살인, 도피, 아편, 거짓항일을 통해 일어섰음이 단번에 드러날 것이다.

중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해왔는데, 집권 후 역대로 펼친 운동에서 수없이 피로 얼룩진 빚을 져왔다. 사람들이 진(眞)을 따르면 중공은 곧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된다.

파룬궁은 ‘선(善)’을 제창한다. 일을 대함에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에게 선하게 대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줄곧 ‘잔혹한 투쟁, 무정한 타격’을 제창했다. 중공의 모범적인 영웅 라이펑은 “적을 대함에 있어서는 엄동설한과 같이 냉혹히 무정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중공은 자기편에게도 이렇게 대한다. 중공의 개국원로, 원수, 심지어 국가주석도 가차없이 혹독한 구타, 잔혹한 형벌을 받았다. ‘계급의 적’에 대한 도살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하게 했다. 만일 선(善)이 사회에서우세를 점하게 되면, 그러한 악(惡)을 기초로 한 중공의 폭정과 군중운동은 성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공산당의 ‘생존 철학’과 파룬궁의 가르침은 완전히 대립된다. 이것이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근본 원인이다. 4·25는 박해의 구실이 됐지만, 4·25가 없었더라도 중공은 다른 구실을 만들어 박해를 감행했을 것이다.
 

-당시 왜 많은 중국인들이 사당(邪黨)의 거짓말과 선전을 믿었나?

현재의 중국사회와 중국인의 사상은 중공이 의식적으로 몇 십 년간 세뇌시킨 당문화(黨文化)로 인해 비뚤어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쉽게 남을 믿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조차 성실과 믿음이 없다. 많은 이들이 인간은 이기적이며 모름지기 자신을 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산사당(邪黨)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 국민들의 자신을 믿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공산당 선전의 속임수에 빠져 들었다.

1999년 7월20일부터 지금까지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한지 11년이 흘렀다. 수천만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은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나 역시 불법적으로 2년동안 노동교양형을 당했다.

무엇을 위함인가.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좋은 것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우리는 억울하다.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념은 그릇되지 않았다. 정확한 증거자료와 신원확인에 따르면, 지난 11년간 박해 받아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은 3천300여 명에 이른다.

일자리를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가정을 파괴당하고 부모와 형제가 경찰에게 위협을 받거나 심지어 사망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중국에서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하기만 하면 중공의 박해를 받게 되고 각종 불이익이 잇따른다.

사람들은 4·25를 보고도 파룬궁 수련생들이 좋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수련생들은 그 후 11년간 스스로의 생명을 댓가로 좋은 사람이 될 권리를 수호했고,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파룬궁 수련생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4·25 당시 파룬궁 수련생들을 회의적으로 보았던 이가 있다면, 이 세상에 아직도 고결한 사람들이 있음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4·25는 집권자와 국민이 평화적인 대화로 갈등을 해결한 가장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만일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지 않고 4·25를 통해 파룬궁 수련생의 이념과 행위준칙이 사회에 가져다 줄 희망을 보았다면, 그래서 이들을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했다면, 중공은 지금처럼 생존위기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의 사악한 본성은 스스로 ‘진·선·인(眞·善·忍)’과 대적할 것을 선택하게 했다. 집권자는 민심을 얻을 좋은 기회를 놓쳤고, 그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었다. 현재, 겉으로만 본다면 파룬궁은 중국에서 여전히 공산당의 잔혹한 탄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기(邪氣)는 정기(正氣)를 누르지 못하는 법이다.

4·25는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며 인류에게는 도덕의 기념비로 천고에 빛날 것이다.

덩궈핑(오른쪽)씨 부부 (사진=따지웬)

 

화칭(華?)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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