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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고찰] 화산(華山)에 이르는 길은 자고로 한 줄기

기사승인 2018.11.29  14:5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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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華山) 북쪽 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전경. (en.wikipedia.org)

화산(華山)은 그 험준함으로 말미암아 오악(五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며 ‘서악’(西岳)으로도 불린다.

화산은 산시성 화인(華陰)시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태령(秦嶺)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황하와 위수(渭水)에 면해 있다. 옛날부터 그 모습을 두고 ‘산세는 흰 구름 밖으로 떨치고, 그림자는 황하 안까지 드리운다’고 묘사한 말이 있었다. ‘사기’(史記)에 전하는 바로는 황제(黃帝), 요, 순 모두 화산에서 노닐었던 일이 있다. 진시황, 한무제, 당현종 등 십여 명의 제왕 역시 화산에서 성대한 제사를 지낸 바 있다. 이들은 왜 모두 화산에서 제사를 지냈을까? 깊이 생각해볼 만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수천 년에 걸쳐 자고로 화산에 이르는 한 줄기(華山自古一條路)가 얼마나 오르기 어렵고 험준한가를 이야기해왔다. 사실 화산은 그 존재 자체가 이미 하나의 수수께끼다. 화산은 한 덩어리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화산 자체가 하나의 큰 바위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중국의 화산(華山) 서봉. (en.wikipedia.org)

산해경(山海經)에는 ‘태화지산(太華之山)은 깎아서 네모를 이루었으며 높이는 오천 길(仞·옛 길이 단위 7~8자)에 이르고 넓이는 십 리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다. 산의 형성은 대개 지각의 운동으로 밀려난 결과 땅이 융기한 결과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거대한 거석(巨石)이 지각 운동으로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깎아서 만들었다는 말인가?

화산에 얽힌 신화와 전설은 ‘거령벽산’(巨靈擘山·거대한 산신령이 산을 쪼개다), ‘취소인봉’(吹簫引鳳·봉황이 퉁소 소리에 이끌려오다), ‘황작함환’(黃雀銜環·꾀꼬리가 옥가락지를 물어다 주다), ‘파경중원’(破鏡重圓·이별한 부부가 다시 만나다) 등 수없이 많다.

그중 ‘거령벽산’은 옛날 옛적 오늘날의 산시(山西)성 경내에 위치한 수양산(首陽山)과 화산은 본디 하나의 산맥이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왕모낭랑(王母娘娘·서왕모)의 반도회 잔치 자리에서 손대성(孫大聖·손오공)이 던진 농담 한 마디에 웃던 노수성(老壽星)이 그만 손이 미끄러져 옥장(玉漿)을 반 잔 가량 쏟았는데, 쏟아진 옥장은 인간 세상에 홍수를 일으켰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은 화산과 수양산에 가로막혀 동쪽으로 흐르지 못했고, 이 바람에 순식간에 큰 바다를 이루었다. 옥황상제는 역사(力士) 거령신(巨靈神)을 시켜 물길을 터주도록 했다. 거령신은 왼손으로는 화산의 돌벽을 밀고, 오른발로는 수양산의 산뿌리를 밟은 채 온몸의 힘을 모아 크게 한 번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두 산이 서로 갈리게 되었고, 백 장 높이의 누런 파도가 넘실거리며 두 산 가운데를 지나쳐 동쪽으로 흘러갔다.

옛적 건곤이 닫히고 조화로 거령 낳으니

수양산 기슭에는 오늘날까지도 거령신이 산을 쪼갤 때 남긴 발자국이 남아 있다. 화산 동쪽 봉우리 절벽 위에는 다섯 손가락이 뚜렷한 거령신의 손자국이 남아 있다. 이러한 ‘화악선장’(華岳仙掌)은 관중(關中·산시성) 8경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당나라 유명 시인 왕유는 화악선장을 찬탄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옛적 건곤이 닫히고 조화로 거령 낳으니, 오른발 한 번 밟고 왼손 한 번 밀자, 천지가 홀연 터지고 큰 강은 동해로 흘러갔다. 이윽고 서치악(西峙岳)이 되었으니 위세가 진나라 도읍을 누르는구나” [昔聞乾坤閉, 造化生巨靈. 右足踏方止, 左和推削成. 天地忽開坼, 大河注東溟, 遂為西峙岳, 雄雄鎮秦京.]

고대 중국은 줄곧 반신(半神) 문화를 유지, 그 결과 전국의 산과 강 가운데 절대다수는 불·도·신(佛·道·神) 신앙과 관련이 있게 됐다. 산이나 강 가운데 대다수에는 도관이나 사찰이 들어서 있고,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명산이요’[山不在高 有仙則名]라는 속담처럼 이러한 산이어야 비로소 보다 운치가 있고 신비스러운 심오함으로 사람들을 매혹하게 된다.

한편 도관, 사찰과 수련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당시 사람들은 수련을 통해서만 비로소 도를 완성하거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화산은 바로 그런 도를 닦는 공간으로서, 산 전체가 모두 도의 기운이 가득하다. 그리고 도를 닦는 것의 최고 경지는 진인(真人), 즉 전진(全真)이다.

화산의 전반적인 생김새 역시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데, 멀리서 화산을 보면 마치 연꽃 같은 생김새다. ‘화’(花)자는 화(華)와 발음이 같은데, 이러한 이유로 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 ‘연’(蓮)은 수련자들에게는 성물이다. 화산은 산 생김새가 다섯 봉우리 즉 동·서·남·북·중봉으로 나뉜다. 고대 중국에는 우주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로 이루어져 있다는 오행(五行)의 우주관이 있었다. 방위와 오행은 대응 관계가 있어, 서쪽은 금, 북쪽은 수, 남쪽은 화, 동쪽은 목, 가운데는 토에 각각 해당한다. 그러므로 화산을 다섯 봉우리로 나눠 각각 오행에 대응시킨 것은 화산을 하나의 작은 세계로 본 것으로서 매우 참신하다고 할 수 있겠다.

화산 바위 절벽에 놓여 있는 나무 다리. (Shutterstock)

화산은 산행길이 매우 험하고 경치가 수려한데 산 아래의 옥천원(玉泉院)에서 남봉의 가장 먼 곳인 전진애(全真崖)에 이르는 길 중간에는 청가평(青坷坪), 회심석(回心石), 천척당(千尺幢), 백척협(百尺峽), 찰이애(擦耳崖), 창룡령(蒼龍嶺), 노군리구(老君犁溝), 호손수(猢猻愁), 금쇄관(金鎖關), 선장애(仙掌崖), 진악궁(鎮岳宮), 장공잔도(長空棧道), 요자번신(鷂子翻身), 남천문(南天門) 등 수많은 조망지와 관문이 놓여 있다.

관문을 넘을 때마다 쉬운 길에서 험한 길로, 험한 길에서 기이한 길로, 그리고 현묘한 길로 넘어가게 된다. 옥천원에서 청가평에 이르는 길은 한적하고 푸른 산골짜기에 새소리와 꽃향기가 가득하지만, 청가평에서 보다 동쪽으로 가게 되면 비로소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이곳에는 거대한 바위인 회심석이 놓여 있다. 바위 위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보이는데, 바로 우뚝 솟은 천척당이다.

천척당은 화산 최고로 산세가 험한 곳이다. 절벽 두 개가 함께 선 중간에 갈라진 틈이 있고 돌계단은 마치 구름까지 이어지는 듯하며 수직으로 떨어지는 철줄은 보기만 해도 오싹하니,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면 마치 하늘에 그은 한 줄기 선 같다. 겁이 많은 사람은 여기서부터 돌아가기 시작하고, 용감한 사람들만이 산행을 계속한다.

창룡령은 길이 100여 m 가량으로 폭은 세 척이 되지 않는다. 중간에 우뚝 솟아 있고 양옆은 천리 낭떠러지인 모습이 마치 등산객의 의지를 시험하려는 듯하다. 일설에 따르면 당나라 문학가 한유(韩愈)는 이곳에 이르러 겁에 질려 울며 구조를 청하는 편지를 쓴 바 있는데 이로부터 ‘한퇴지’(韓退之·한유의 자)가 투서한 곳이라는 명승고적이 남게 되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당시의 등산은 모두 갈고리를 걸고 사다리를 딛으며 고개를 오르는 형식이었다. 하늘 높이 설치된 장공잔도나 삼면이 허공에 면한 채 위쪽은 돌출되고 아래는 오목한 요자번신(鷂子翻身·공중제비)은 험하기가 비길 데 없다.

화산의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경사지. (en.wikipedia.org)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명산이라

한편 남봉 저 멀리에는 안쪽으로 들어간 절벽이 하나 있는데 절벽 위에는 ‘전진애’(全真崖)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고 글자 하나당 가로세로 3m 정도다. 필체는 질박하고 굳세며, 새긴 솜씨 또한 정교하다. 허공에 매달려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어서 위로는 하늘에 맞닿아있지 않고 아래로는 땅에 닿아있지 않은 이런 절벽에 이렇게 큰 글자를 새긴 사람은 과연 또 누구란 말인가? 예로부터 민간에 전해졌던 ‘신선이 아니면 또 누가 새겼으랴’라는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화산에는 수많은 신선이 있는데, 역대 수련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들로는 진단(陳摶), 학대통(郝大通), 하원희(賀元希)가 있다. 송나라의 유명한 예언시인 ‘매화시’를 지은 이름난 역학 대가 소강절(邵康節)은 진단의 제4대 계승자였다. 진단의 공력이 과연 범상치 않았음을 알 만하다. 그는 역학에 정통해 하늘을 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운명을 점치는 능력도 있었다. 그는 “화산 높은 곳은 내 궁궐이니 나오면 바로 높은 하늘이요, 새벽바람을 가른다. 누각 금빛 자물쇠를 열어주지 않아도, 때가 오면 흰 구름이 저절로 둘러싼다”고 말했다. 북칠진(北七真) 가운데 한 사람인 학대통은 화산파의 창시자다. 하원희는 장공잔도를 설치한 이로서, 허공에 매달려 전진애를 새긴 사람은 당연하게도 바로 그다.

수련자들이 진인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관문을 거쳐야만 한다. 회심석이라고 해도 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 마음을 바로잡고 의지를 굳게 하여 천척당을 거쳐 창룡령을 넘어 금쇄관까지 넘은 후 장공잔도를 건너면 마지막으로 전진애에 이르는데, 도가의 최고 경지인 진인이 되는 길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길이다.

화산 동쪽 봉우리 정상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정각이 보인다. (en.wikipedia.org)

화산에는 또한 네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 첫 번째 미스터리는 동리옹(洞裡甕), 두 번째는 앙천지(仰天池), 세 번째는 승표태(升表台)', 네 번째는 전진애(全真崖)다.

동리옹은 이름 그대로 동굴 안에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 있다. 이 항아리는 동굴 입구보다도 훨씬 큰데, 그런데도 깨진 곳 없이 멀쩡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동굴 안으로 들어온 것인가? 항아리가 먼저 있었는가 아니면 동굴이 먼저 있었는가?

앙천지 연못은 화산 최고 봉우리인 남봉의 정상 위에 있으며 가로세로 1m가 채 되지 않고 수심 역시 한 척이 안 된다. 도가에서는 이 연못을 ‘태을지’(太乙池)라고 부른다. 연못이 작다고 해서 그 신통력을 얕봐서는 곤란하다. 이 연못은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고, 비가 많이 와도 넘친 적이 없으며, 사계절 내내 연못의 물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해발 2,000m의 산 정상, 그것도 더없이 단단한 화강암 지대인 이곳에서, 연못물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매년 음력 3월 늦봄이 되면 화산을 참배하는 도가 신도들이 모두 승표태에 모여 표(表·신을 경배하는 데 쓰는 노란 종이)를 잘게 찢은 후 산 밑으로 날려보낸다. 다른 장소에서 날려보낸 종잇조각은 산 밑으로 떨어지지만, 여기에서 날려보낸 종이는 그와 정반대로 하늘을 향해 팔랑팔랑 날아올라 간다. 더욱 이상한 것은 종잇조각이 하늘 가득히 날아갈 때마다 제비떼가 어디로부터인가 날아와 종잇조각을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종잇조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비의 숫자도 늘어나고 종잇조각이 적을수록 제비도 적어진다. 종잇조각을 모두 먹고 나면 제비들은 사라진다. 왜 이 장소에서 날린 종잇조각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 제비들은 왜 날아와 종잇조각을 먹는 것이며, 이처럼 높은 고산지대에서 제비떼는 또 어디서 나타나는 것인가?

전진애는 위에서 상술했으므로 여기서는 재차 설명하지 않는다.

이러한 미스터리 현상들은 모두 지어낸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제 상황이다. 오로지 신에 대한 올바른 믿음만이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하는 이러한 미스터리를 풀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도를 찾아 산행에 나선 이들은 이러한 현상을 접한 후 그간 수련해온 믿음을 보다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화산에 이르는 길은 자고로 한 줄기’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야만 하는 길을 짚어준 것이다. 그 길은 바로 수련의 길이다. 출발점인 청가평에서 도착점인 전진애에 이르는 길은 생명이 참됨(真)으로 돌아간다는 하나의 암시로서, 오직 수련을 통해서만 비로소 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암시한다. 수련의 길은 비록 험하고 굴곡지지만, 동시에 즐거움과 희망이 함께한다.

화산(華山) 일경 쇼우선야(守身崖). (zh.wikipedia.org)

톈신(天新) / 자유기고가 china@epoch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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