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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4차 핵실험과 중공의 권력 다툼

기사승인 2016.02.02  18: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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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 정권, 시진핑과 맞서 있는 장쩌민파와 밀월 관계

 북한이 지난 6일 제4차 핵실험을 진행했다. 한국에서는 진도 5.1에 해당하는 진동이 감지됐다. (YEON-JE/AFP/Getty Images) 

지난 6일 북한은 수소폭탄 발사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혀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으며 세계 각국에서는 즉각 비난이 이어졌다. 북한은 과거 세 차례에 걸친 핵실험 당시 모두 최소 30분 전에 중국과 미국에 통보해 왔으나 이번 실험은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에 대해 신속히 대응, 실험 여부를 사전에 알지 못했음을 알리는 한편 실험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2006년 10월 9일부터 현재까지 북한은 총 네 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다. 이 글에서는 네 차례에 걸친 핵실험의 내막을 밝히고자 한다.

식상해진 말 안 듣는 타이르는 

북한 김씨 정권은 세계 2차대전 이후 공산주의 진영과 서방 자유세계 진영이 서로 대치하는 가운데 수립됐다. 김씨 정권의 배후에는 구소련과 중공이 뒷받침하고 있었는데, 김씨 정권이 폭정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경제와 군사 방면에 걸친 구소련과 중공의 폭넓은 지지 덕분이었다. 중국은 북한의 최대 교역국이자 식품·무기·연료 공급처로서, 90년대 이후 북한의 식품과 에너지의 90%는 모두 중국에서 공급받은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살펴볼 때,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는 김씨 정권과 중공과의 관계로 볼 수 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거의 중공의 원조에 의지하고 있으며, 중공은 그 대가로 북한을 서방국가에 대항하는 도구로 삼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간 북한은 공산주의 독재국가로서 3대에 걸친 김씨 정권의 독재 치하에 공산 독재정권의 병폐를 남김없이 재현해왔다. 김씨 일가는 대내적으로 독재통치를 시행, 국민을 탄압하고 국력을 자신의 이익에 사용했다. 북한에서는 전역에 기아가 만연하고 굶어 죽는 일이 속출해 사람들이 남한으로 탈출하고 있다. 김씨 일가 3대는 당내 정적을 지나칠 정도로 잔혹하게 숙청하는데, 심지어 김정은은 취임 이후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사형시켰다.

김씨 정권은 대외적으로 세계를 협박하는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중공의 지지를 얻어냈고, 중공은 북한이라는 불량배 아우를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항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북한은 핵 위협이라는 위험한 게임을 반복해 왔는데, 그 목적은 독재자 김정은의 개인적 권력을 극대화함으로써 독재정치의 기반인 경제적 지원을 보장받으려는 데 있다. 이러한 북한의 막후 조종자는 바로 중공이다.

중공은 6자회담을 이용해 여러 차례 이러한 게임을 벌여 왔는데, 늘 이런 식이었다. 우선 북한이 핵 위협을 통해 UN 제재를 받고 미국의 경고를 받는다. 이어 미국과 국제사회는 중국의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 등을 주문한다.

중공은 이를 기회 삼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내부문제를 해결한다. 사실 6자회담은 중공과 북한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름없다.

북한중공 장쩌민파와 밀월관계

시진핑 정권 출범 이전까지 북한 관련 정책을 결정한 것은 중공 장쩌민파였다. 북한 김정일 정권은 장쩌민 일파와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셰리든 극동지역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장쩌민파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은 중공과 김씨 부자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김정일이 2010년 김정은을 후계자로 정식 지정해 열병식을 거행했을 당시, 저우융캉은 김씨 부자와 함께 단상에 섰던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장쩌민파로 분류되는 장더장 현 상무위원은 과거 북한으로 유학해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과에서 2년 과정을 수료한 바 있다. 장쩌민의 책사 쩡칭훙 역시 김정일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쩡칭훙은 2001년 3월 장쩌민의 방북 당시 선발대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북한은 이후 쩡칭훙과 김정일이 함께 그려진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또한, 보시라이, 저우융캉은 정변 기도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도피처로 북한을 고려했던 것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이처럼 장쩌민파 주요 인물들과 북한 고위층은 긴밀히 서로 협조해왔는데, 과거 쩡칭훙·저우융캉·장더장 등이 그랬다면 지금은 류윈산 상무위원이 그러한 인물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열병식 당시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공 국가부주석이 이끄는 사절단의 방북을 거절한 반면, 장쩌민파 류윈산만은 특별초청했다. 보도에 따르면 류윈산은 북한 열병식의 TV 중계방송을 뒤에서 총지휘했으며 베이징 열병식을 중계한 중공 CCTV 주요 기술자들을 사전에 파견해 북한을 돕기도 했다. 최근 취소됐던 북한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공연 역시 류윈산이 북한 방문 당시 협의해 내린 결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北 핵실험中 정치적 사건과 겹쳐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 10월) 전에는 후진타오에 대한 함포사격 사건이 있었다. 그해 5월, 당시 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후진타오는 북해함대 시찰을 위해 서해를 방문했다가 군함 2척의 공격받는 사건을 겪는다. 이 사건은 장쩌민파 해군 사령관의 명령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후진타오는 6월 중앙기율검사위위원회 조사팀을 상하이로 파견해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서기를 낙마시켰다. 장쩌민파의 후계자였던 천량위는 2년 뒤 18년형을 선고받았다.

북한의 2차 핵실험(2009년 5월) 역시 후진타오에 대한 암살모의와 시기적으로 겹쳤다. 그해 4월 중공은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열병식을 칭다오 해역에서 개최했는데, 홍콩 언론에 따르면 후진타오는 열병식 직전, 개막과 동시에 장쩌민파 요원들의 암살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고 갑작스럽게 계획을 변경해 암살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3차 핵실험(2013년 2월)은 갓 출범한 시진핑 정부가 장쩌민파에 대한 공세를 본격화한 시기였다. 앞서 2012년, 장쩌민·쩡칭훙·저우융캉·보시라이 등 장쩌민파는 차기 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쿠데타를 모의했으나, 보시라이 당시 충칭시 서기가 낙마하면서 오히려 위기에 몰리게 된다. 집권 마지막 해였던 후진타오·원자바오가 시진핑과 손잡고 벌인 통쾌한 반격이었다. 2012년 말 대권을 물려받은 시진핑은 장쩌민파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다. 그해 12월 리춘청(李春城) 쓰촨성 부서기를 낙마시킨 것. 리춘청은 시진핑 정부 출범 후 낙마한 첫 장쩌민파 고위직이었다. 

시진핑대북정책 변경 거리 두기

최근 몇 년간 중국과 한국 간의 관계가 갈수록 부드러워지면서 북한은 국제협의를 위반한 채 수차례의 핵실험을 진행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았다. 중국 국민은 점차 “중국은 북한을 지지하느라 국익에 손해를 입고 있으며, 국제 사회에서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북한은 중국에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하게 됐다. 시진핑은 취임 이후 북한에 대해 과거 중공 및 장쩌민파와는 다른 정책을 시행해 북한과 거리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2014년 7월 3~4일 양일간에 걸쳐 한반도를 최초 방문한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기에 앞서 박근혜 한국 대통령을 먼저 회견, 중공의 전통적인 관례를 뒤집었다.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로 김정은은 여러 차례에 걸쳐 베이징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으나 한 차례도 승인받지 못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시진핑을 다섯 차례 접견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시진핑 당국의 외교 방침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시진핑은 취임, 집권 이후로 북한과 거리를 두는 것 외에도 의법치국(依法治國·법에 따른 국가통치) 원칙 제창, 자유무역구 개방, 위안화 SDR 편입, 미국을 공격한 해커 처벌, 마잉주와 정상회담 통한 양안 관계 개선, 군사개혁 시행 등 일련의 조치들을 취해 왔다.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국제사회와 보폭을 맞추고 사회구조 변혁을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그런 한편 장쩌민파 세력은 줄곧 북한과 긴밀하게 협조해 왔으며, 북한 문제를 시진핑에 대항하는 도구로 삼았다. 지난번 북한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공연을 주선한 것이 장쩌민파였다는 점과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은 모두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4차 핵실험시진핑 화해외교에 찬물

북한의 지난 세 차례 핵실험은 대체로 중공 내부 정국 상의 중대 사건들, 즉 후진타오, 원자바오, 시진핑 진영과 장쩌민파 간의 치열한 게임과 시기적으로 겹쳤다. 이는 중공 내부의 장쩌민파 세력이 북한과 밀접하게 협력해 왔으며, 장쩌민파는 북한 문제를 시진핑에 대항하는 도구로 삼았음을 어느 정도 증명한다. 2016년 새해가 밝자마자 일어난 북한의 핵실험은 장쩌민파가 북한을 사주해 시진핑의 발목을 잡아온 일련의 방해공작과 연장선에 있다. 그 강도는 한층 과격해졌다.

시진핑 진영 매체 협객도(俠客島)는 북한 핵실험의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에서 “이번 수소폭탄 사건은 본질적으로 북한이 조선노동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허세를 부려본 것으로서, 국제사회를 향해 위세를 과시하는 한편 대내적으로 권위를 재확인하는 행동이었다. 두 가지 모두 김정은 유일 영도체제를 공고화하고 확정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평했다.

이밖에 다른 원인을 찾자면,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된 것은 대내외적으로 정권의 존재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듯 독선적이고 지역의 평화를 파괴하는 움직임은 중공 장쩌민파의 이익에 절묘하게 부합한다.

2015년은 시진핑 집권 3년째였다. 3년간 중공 정국 상의 변화는 주로 시진핑과 장쩌민파의 치열한 정치 게임을 둘러싸고 벌어져 왔다. 동시에 2015년은 시진핑이 장쩌민파를 겨냥해 시작한 반부패 호랑이 사냥이 일차적인 승리를 거둔 해이기도 했다. 시진핑은 중공 군대·외교·정법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통제력을 한층 강화했으며, 특히 새해 들어 군사개혁을 한층 강화해 기선제압에 나서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장쩌민의 비서 겸 총정치부 부주임이었던 자팅안(賈廷安)이 정직·조사처분 받은 것으로 전해지는가 하면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의 부하 2명 즉 아이바오쥔 상하이시 부시장과 창샤오빙 차이나유니콤 이사장이 지난해 말 낙마했다. 얼마 전 태상황(太上皇·정치에 관여하는 은퇴 정치인을 비유)을 비판하는 시진핑의 발언이 처음으로 공개됐는데, 이 가운데는 장쩌민을 겨냥한 ‘단서철권’(丹書鐵券·면죄부), ‘철모자왕’(세습귀족) 등의 발언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2016년 시진핑 정부의 호랑이 사냥 목표가 장쩌민으로 확정됐다는 신호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중대 안전사고나 증시 폭락을 유발하는 등 장쩌민파가 시진핑을 겨냥해 다방면으로 시도한 정변 움직임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장쩌민파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국내에서 중대사고나 위기를 촉발할 기회나 가능성 역시 갈수록 희박해지는 가운데 북한은 장쩌민파의 얼마 남지 않은 가용자원으로 떠올랐다. 중공 장쩌민파 입장에서 북한이 새해 들어 진행한 핵실험은 시진핑에 대한 테러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은 취임 이후로 중국 사회·경제·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거 중공 장쩌민파와는 다른 노선을 취해 개혁 조치들을 시행했으며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해왔다. 시진핑은 안정된 국내외 환경이 필요하다. 북한의 핵실험은 동아시아 각국 정세를 경색되도록 하며, 이는 지역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시진핑 당국에 국제적 압력으로 다가온다. 이는 또한 시진핑의 반부패 호랑이 사냥이 장쩌민파에 가하는 압박의 정도를 일부분 희석하고 완화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시진핑은 얼마 전 동북 3성의 경제를 부흥시키겠다고 천명했는데, 북한 핵실험은 동북 3성에 환경 파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민심을 흉흉하게 만든다. 요컨대 북한 핵실험은 중공 장쩌민파 세력에게 있어 모든 것을 건 도박이자 최후의 발악과도 같다. 

전망

향후 추세를 전망하자면, 북한에 대해 과거 중공 장쩌민파와는 다른 정책을 취해온 시진핑은 용인 범위를 벗어난 북한의 이번 행동으로 말미암아 향후 북한 정권에 대해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시진핑 당국이 이번에 내놓은 공식 반응에서 “단호히 반대” 등 강경한 언사를 채택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시진핑 당국은 이후 북한에 대해 경제적인 측면을 포함한 실제적인 제재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제재조치는 북한과의 거리감을 보다 넓히는 동시에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류적 입장에도 부합하는, 국제사회와 보폭을 맞추는 조치로서 국제사회의 지지와 환영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나 제재조치를 취함으로써 중국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는 한편 북한과 밀접한 관계로 결탁해온 장쩌민파 세력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장쩌민파 인물들 가운데 북한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장더장, 류윈산 등은 이로 인해 문책이나 권한 박탈을 당할 가능성이 크고, 북한과 결탁해 위기를 조장해온 인물들은 궁극적으로 처리, 숙청될 것이다. 중공과 북한이 여러 해에 걸쳐 국제사회를 향해 연기해온 짜고 치는 고스톱 역시 끝을 맺게 될 전망이다.

북한 핵실험은 시진핑 당국으로 하여금 장쩌민파에 대한 처리를 서두르게 하는 간접적인 촉매가 될 수 있다.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china@epoch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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