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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특무정치 핵심 ‘국가안전부’

기사승인 2016.08.30  14: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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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쩌민파, 정적 제거하고 파룬궁 탄압하는 비밀 도구로 활용

장쩌민과 쩡칭훙은 안전 계통의 특무를 이용해 모든 고위간부의 부정부패 증거를 미끼로 자신들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강요했다. (EPOCHTIMES)

장쩌민(江澤民) 집권의 가장 큰 특징은 ‘특무치국(特務治國·스파이를 이용한 정치)’이다. 그중 최고 특무 수장인 쉬융웨(許永躍·전 국가안전부 부장)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많은 ‘악행’을 쌓았는데, 그의 행적은 대부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외부에서는 “중국공산당 정보기관의 수장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쉬융웨가 총괄했던 국가안전부(국안)의 업무는 정보수집·분석, 반(反)간첩 활동, 정치보위 등이다.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활성화 되어있는 정보기관이며 국내의 안보분야에도 부분적으로 참여한다.

국안은 철통 같은 베일에 싸여있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없고 부(副)부장의 이름과 각국(局) 부문의 어떠한 상황도 공개하지 않는다. 정부 홈페이지에 국안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만, 국가의 모든 부와 위원회는 링크가 있지만 국안은 제외되어 있다. 국안 관료들은 문제가 생긴 후에야 언론에 알려져 외부에서 알 수 있었다.

쉬융웨 전 국가안전부 부장은 장쩌민 집권 시절 최고 특무 수장으로 ‘사람이 아니라 귀신’라 불렸다. (INTERNET IMAGE)

정보기관 수장은 ‘사람이 아닌 귀신’

정보기관 수장이 되려면 당연히 당(黨)의 절대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정보기관은 비밀에 가려져 있고 비밀무기를 장악하고 있어 법의 제약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고 살상력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평론가 친웨(秦鉞)는 2000년 잡지 '베이징의 봄(北京之春)' 기고문에서 정보기관의 수장을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고 칭했다. 특무를 창설한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잔혹한 당내 투쟁에서 ‘무적의 장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라고 할 만큼 특무를 통해 잔인한 계략을 썼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는 당내 변절자를 징벌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노인과 아이를 포함한 구순장(顧順章) 일가 8명을 살해해 한때 이 ‘멸문 살인사건’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정보계통 특수요원이라는 안전한 바람막이를 교묘히 이용했으며 자신만의 권력계통으로 운영했다.

또 한 명의 특무 수장 캉성(康生)은 과거 옌안(延安)에 있을 때부터 특수요원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옌안에서 이른바 '정풍운동(整風運動)'으로 4만명의 당 간부 중 특무 1만 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그의 직책은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문혁소조(中央文革小組) 고문까지 올라갔는데, 문화대혁명 시기 그가 직접 모함하고 박해한 간부가 839명에 달했다. 펑더화이(彭德懷), 허룽(賀龍), 타오주(陶鑄), 장원톈(張聞天), 왕자샹(王稼祥), 린펑(林楓) 등 당정 고위관리와 유명인사 82명이 그의 박해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캉성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악행을 저질렀으며 특무 수단을 이용해 내부 투쟁의 고수가 됐다. 캉성이 죽은 뒤 당 안팎 인사들은 그를 저주했으며 특무를 이용한 대표적 악인의 대명사가 됐다. 천윈(陳雲)은 “캉성은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다”라며 직접 비난했다.


특무치국, 장쩌민이 매달린 지푸라기

공산당이 정권을 빼앗은 후,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치의 이름으로 특무란 수단을 사회의 모든 분야에 이용했다. 이는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다. 반세기 동안 중국공산당의 통치 위기는 나날이 엄중해졌고, 공산당 지도자는 새로운 주석이 교체될수록 예전만 못했다. 장쩌민 시기에 이르러 자신감은 더욱 결여됐다. 보안·정보계통의 특무를 동원해 통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마치 장쩌민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 같았다.

세계 2차대전사 전문가 뤼자핑(呂加平)은 장쩌민에게 ‘두 가지 매국, 두 가지 거짓말(二奸二假)’ 문제가 있다고 발표했다. ‘두 가지 매국’은 첫째 장쩌민과 그 아버지가 친일 매국노이며, 둘째 장쩌민이 소련에 충성하던 KGB 간첩인 것을 뜻한다. 이로 인해 장쩌민은 드넓은 중국영토를 러시아에 선물로 바쳤다. ‘두 가지 거짓말’이란 첫째 장쩌민 자신이 1949년 이전에 중국공산당 지하당에 가입했다고 속여 가짜 당원 행세를 한 것이고, 둘째 공산당 열사인 장상칭(江上靑)의 양자라고 사칭하며 열사의 아들 행세를 한 것이다.

장쩌민은 특무치국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장쩌민이 중요한 자리에 임용한 대내총관 쩡칭훙(曾慶紅)이 바로 특무의 고수다. 쩡칭훙의 부친 쩡산(曾山)은 중국공산당 설립 초기에 특무계통의 내무부 장관을 맡았으니 쩡칭훙에게 정보 특무계통은 가업인 셈이다. 정치적 라이벌을 무너뜨리고 반대자를 진압했으며 2000년 폭로된 ‘양안 밀사사건’에서 장쩌민과 쩡칭훙은 악독한 만행을 충분히 드러냈다.

장쩌민과 쩡칭훙은 서로 결탁해 나쁜 짓을 일삼았으며, 특무와 비밀정치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켰다. 장쩌민과 쩡칭훙은 안전 계통의 특무를 이용해 모든 고위간부의 부정부패 증거를 손에 넣었으며 이를 이용해 자신들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강요했다.

중국공산당은 다른 의견을 가진 인사들과 파룬궁 수련자, 그리고 자유지식인들에 대해서도 대량의 특무 수단을 이용했다. 예를 들어 전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의 비서 바오퉁(鮑彤)과 톈안먼 피해자 어머니, 민주운동 인사 등 인물들에게 비밀경찰을 파견해 24시간 감시했다.

중국공산당의 특무 활동은 세계 각지에도 침투해 있어 국제사회는 거대한 위협요소로 보고 있다. 서양 각국의 인터넷 해커 공격이 바로 이 부류의 사례다. 미국 정부와 기업이 해커에 의해 자료와 기밀을 여러 차례 도둑맞았다. 미국은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2013년 2월 중국공산당 인터넷 해커 61398부대를 폭로했다. 부대는 상하이의 한 고층 빌딩에 머무르고 있었으며,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부(總參謀部) 3부2국에 소속되어 있었다. 2014년 5월 19일, 미국 사법부는 첩보활동의 죄로 중국 61398부대의 장교 5명을 고소했다.


쉬융웨가 승진한 내막

장쩌민과 쩡칭훙의 특무치국의 큰 전략 하에, 쉬융웨가 두각을 드러냈다. 1998년 자춘왕(賈春旺)으로부터 국안부장을 인계받았을 때 외부에서는 매우 놀랐다. 쉬융웨는 중등전문학교(전문대학)의 학력만 있으며 정계에서는 눈에 띄지 않아 존재감이 없었고 정치업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다크호스로 떠올라 중요한 부서의 직무를 인계받았다. 우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첫째,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쉬융웨는 악랄하고 잔인하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둘째, 쉬융웨와 장쩌민은 일찍부터 내통했으며 장쩌민은 그를 믿을만한 심복으로 생각했다. 셋째, 쉬융웨의 출신 배경이다.

쉬융웨는 1942년 7월 허난성 전핑현(鎮平縣)에서 출생했으며 1960년 베이징시 공안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부친 쉬밍전(許鳴眞)은 중국공산당의 고위장교 천겅(陳賡)의 비서이자 참모였다. 또한 공산당 중앙위 통일전선부 판공실의 책임자와 국방과학기술위원회 판공청의 부주임을 맡았다. 1987년 제13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위원을 담당했으며 이후에 제8기 전국 정치협상회의의 위원을 맡았다. 또 쉬밍전은 덩샤오핑(鄧小平) 시기에 리덩후이(李登輝·1988∼2000년) 대만 총통과의 담판 밀사를 맡았다.

쉬융웨는 1983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제1서기인 천윈의 정치비서를 맡았다. 또한 천윈 사무실의 책임자와 차관급 중앙고문위원회 부(副)비서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쉬융웨는 천윈의 집에서 장쩌민과 친분을 맺게 됐다. 잡지 ‘전초(前哨)’는 2015년 5월호에서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 전날 장쩌민이 갑자기 상급기관으로 전근되어 베이징에 가게 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정치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장쩌민은 상급기관으로 전근된 진짜 의도를 알지 못해 초조하고 두려워했다. 당시 쉬융웨는 천윈의 정치비서와 중앙고문위원회 부비서장을 겸직하고 있었는데, 공항에 장쩌민을 맞이하러 나가 천윈 등 원로들이 장쩌민을 총서기로 진급시키려 한다고 알려주었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장쩌민은 안심하며 쉬융웨에게 아주 고마워했다.

천윈과 리셴녠(李先念)은 장쩌민의 총서기 임용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장쩌민은 천윈을 만날 때마다 지극정성으로 보필하고 충성을 표시했다. 쉬융웨는 천윈의 기분이 좋을 때 장쩌민을 만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획했다. 장쩌민은 천윈을 만나면 아첨을 아주 잘했다. 두 사람의 악한 마음이 아주 잘 맞은 것이다. 당시 장쩌민은 베이징에 갓 입성해 가는 곳마다 굽신거렸는데 쉬융웨에게 아주 고마워했다. 나중에 쉬융웨가 국안부장에 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쩌민파가 정적을 공격한 비밀 도구

쉬융웨가 국안부장을 인계받은 후, 장쩌민과 쩡칭훙은 ‘특무치국’의 계략을 한층 발전시켰다. 쉬융웨는 공공기관을 사적으로 이용해, 국안부장이라는 공권력으로 장쩌민·쩡칭훙을 위해 정적을 공격하고 권력을 확대하는 데 사용했다. 따라서 쉬융웨는 장쩌민 파벌의 핵심 요원이 됐다.

장쩌민과 쩡칭훙은 쉬융웨가 관직에 오르기 전부터 정적 공격에 국안을 동원했다. 1995년, 당시 베이징 시장 천시퉁(陳希同)을 숙청하기 위해, 장쩌민은 국안 요원을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 덩빈(鄧斌) 모금 활동에 가입시켜 베이징시위원회 판공청 관계자와 덩빈이 유착 관계라는 증거를 손에 넣었다. 덩빈이 불법으로 자금을 모았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천시퉁을 무너뜨리는 첫 번째 도미노가 됐다. 장쩌민은 또 특무의 힘을 이용해 천시퉁의 사생활 약점을 잡아 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장쩌민을 분석한 책 ‘장쩌민 그 사람’에서는 베이징 부시장 왕바오썬(王寶森)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장쩌민이 특무를 이용해 왕바오썬을 교외에서 살해하고 그 빌미로 천시퉁을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장쩌민과 쩡칭훙은 국안과 인민해방군 총참모부를 이용해 중앙의 각 부와 위원회 및 성급(省級) 기관의 주요 지도자의 정치 동태를 감시해 공산당 체제의 비밀 통제를 시행하고, 필요시 정적을 공격했다. 또한 장쩌민은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많은 비밀 정보를 장악해 후진타오(胡錦濤)와 원자바오(溫家寶)의 실권을 잃게 함으로써 정국을 10년 동안 조종할 수 있는 무기로 활용했다.

쉬융웨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 특무기구의 최고 지도자인 동시에 파룬궁 문제를 처리하는 중앙영도소조의 부조장을 겸임했다. 쉬융웨의 재임 기간 파룬궁 감시·박해가 국안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됐다.

국안은 최고 특무기관으로 제일 먼저 도청·감시시설을 설치했으며 거대한 특무 조직을 보유하고 무제한적인 경비를 지원받았다. 근 20년 동안 대부분의 힘을 파룬궁을 감시하고 정탐하고 박해하는데 투입했다.

웨화 기자 editor@epochtimes.co.kr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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