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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국은 겁쟁이들의 나라다”

기사승인 2017.02.22  14: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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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모그 관련, 중국 엄마가 위챗에 올린 '분노의 글'

스모그가 가득 낀 베이징에서 한 여자가 마스크를 착용한 채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다.(Getty Images)

이 글은 위챗 유저인 ‘yashalong2000’의 글을 번역한 것으로 현재 중국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스모그가 뒤덮인 하늘 아래서 평범한 중국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좌절감과 두려움이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1월 초에 작성된 이 포스트는 당국의 검열로 인해 삭제됐으나 해외 웹 사이트에서 캡처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유저는 여성으로 추정되며 이름과 사는 곳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통해 전해지는 간절함은 온라인 공간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편집자 주-

 

요즘에는 단 하루도 짜증나지 않는 날이 없다. 스모그 때문이다. 오늘 우리 아이가 목이 아프다면서 기침을 하는 탓에 나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학교 현장에 공기 청정기 설치가 시급하다는 의견에 대해 위챗으로 열성적인 지지를 표현하고 있지만 이런 행동이 얼마만큼 당국의 변화를 이끌어낼 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부모들에게는 힘이 없다. 이 사실이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회색 안개’에 갇혀 지내며 신음했다. 심지어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으므로 고작 안개나 먼지, 또는 이와 비슷한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지나쳤다. PM2.5라고 불리는 미세 먼지가 폐포세포를 관통하고 혈류에 흐를 때까지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다.

이 점에서 미국 대사관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줬다. 매일 PM2.5 지수를 발표하라고 당국을 압박했던 것이다. 비로소 많은 중국인들이 미세먼지에 대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됐다.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미국 대사관을 공격했다. 내정을 간섭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가치를 중국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당시 TV뉴스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PM2.5에 대해 걱정할 만큼 심각하지 않으며 당국이 그와 관련한 데이터를 공개할 의무는 없다고 일축했다. 그들은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더 이상 문제를 은폐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말은 거짓이었다고 자인했다. 그러나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사과도 없었다.

정부와 언론은 국민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 대사관을 결코 비난한 적 없었던 것처럼, PM2.5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적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그들은 정말 몰랐던 것일까? 10억 명이 넘는 인구와 엄청난 과학기술을 습득한 연구원 집단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아무도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내가 먼저 미국이 싫다고 당국에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나 역시 중미 간에 얽힌 이해관계를 알고 있다. 그러나 공기가 매우 유독하며 PM2.5라는 지표가 심각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평범한 중국 시민들에게 알려준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인들이었다. 또한 미국인들은 공기를 정화하는 방법에 대해 시급히 강구할 것을 당국에 요청했으며, 시민들에게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적이며 그렇지 않으면 건강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디어들은 미국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공격하기에 바빴다. 우리는 누구를 싫어해야 하나?

이틀 전 나는 스모그에 대한 기사(위챗에 포스팅됐던 ‘왜 우리 아이들은 인정사정없이 스모그 속으로 내몰려야만 했나?’)를 읽었다. 내가 포스트를 공유한 직후 그 글은 검열에 의해 삭제됐다. 이 기사의 주장이 옳았을 수도 있고 틀렸을 수도 있다. 사실 문제는 삭제됐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아이의 기침 때문에 하루 종일 화가 난 상태로 나는 이 문제를 방관하고만 있는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끝내 이를 토로하고 말았다. "정부 청사에는 공기 정화 시스템이 있지만 학교에는 없는 이유가 뭐죠?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스모그가 심한 야외에서 일해야 해요. 이렇게 하면 스모그와 관련한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될 지도 몰라요."

내가 여기에서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 외에 다른 불만 사항도 털어놓았다. 시아버지는 아이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고 역정을 냈다. "아이가 그대로 따라 말하고 다니면 어쩌려고 그러니?" 시아버지의 코멘트는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공기의 질이 이렇게 나쁜 상황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몇 마디 말조차 못하다니! 이 사회는 어떻게 된 사회인가?

물론 나는 시아버지를 이해한다. 그는 두려움에 짓눌려 있던 세대다. 그들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두려움을 경험했으며 결국 이 두려움을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바꾸어버렸다. 나는 그 세대에 대해서 큰 희망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들의 영혼은 복원 불가능하다. 다만 다음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늘 이전 세대의 조언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은가? 물론 전 세대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누가 그 두려움을 부인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다.

우리 중국은 겁쟁이들의 나라다.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쑨쯔강 사건과 같은 사례는 넘쳐난다. 그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반납함으로서 대가를 치렀고 우리는 그들을 잊어버렸다.

우리 세대는 두려움의 존재를 인식하며 두려움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전 세대보다 더 나아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두려움 밑에는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 선택의 기회는 다가올 세대에게 푸른 하늘을 물려주기 위해, 꽃으로 피어날 씨앗과 같은 것이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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