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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보도] 공산주의는 출로가 아닌 파멸의 길이다(상)

기사승인 2017.02.27  0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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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베를린의 노동자들이 마르크스 조각상을 옮기고 있다.(Getty Images)

100여 년 전, 공산주의의 유령이 유럽 상공에 나타났다. <공산당 선언>의 발표 및 파리 코뮌의 출현에서부터 소련, 중공 등 공산당 정권이 세워지기까지 공산주의의 사상이 휩쓸던 시기가 있었다. 이렇게 인류 사회의 이데올로기 영역에는 공산당 독재체제와 민주 자유 체제라는 완전히 대립된 두 진영이 형성되었다.

100여 년의 중국공산당의 역사를 훑어보면 어느 곳에서나 끊임없는 전란(戰亂), 기아, 학살과 테러로 얼룩졌다. 공산주의 운동은 인류가 지켜온 몇 천 년 문명을 훼손했으며 1억 명이 비정상적으로 사망하는 참극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인간 천국’이라는 가설은 10억 명이 넘는 인구를 ‘인간 지옥’으로 내몰았다. 그것의 신앙에 대한 박해, 도덕적 가치에 대한 파괴, 생태 환경에 대한 파괴로 조성된 악영향은 심각하다.

공산주의가 점점 와해되고 있는 오늘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학설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공산주의가 사라지는 것을 저항하며, 공산주의 사조는 자유 사회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판단하고, 공산주의 사조의 화근을 근절하는 것은 세계 각국 및 개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1. 공산주의의 탄생

공산주의의 출현과 확산은 인류 사회의 2가지 큰 변화와 관련이 있다. 첫째는 산업혁명이다. 산업화된 나라들은 주기적인 경제 위기를 겪은 후 대량의 실업자 및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며 기업 및 은행도 파산하고 만다. 사회의 빈부 격차는 더욱 심각해지고 사회모순도 끊임없이 격화된다. 사람들은 고민하고 방황하며 현실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반성을 하지만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정책 및 체제는 그 어떤 좋은 해결책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 사조가 점점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회모순의 근원을 사유제로 돌리고, 고용관계는 적나라한 착취관계라고 말한다. 이 사회주의의 목표는 사유화된 재산 및 ‘계급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산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의 모순은 갈수록 첨예해질 수밖에 없으며, 자산계급은 결국에는 멸망하게 되어 있으므로, 폭력으로 현존하는 모든 사회제도를 뒤엎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는 1859년 <종의 기원>의 발표다. 진화론의 가설은 사람들이 신을 향한 신앙을 위배하게 한다. 공산당은 ‘자연선택’ 이론을 계급투쟁에 적용해, ‘투쟁’이야말로 공산당 정권이 유지될 수 있는 수단 및 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의 유토피아 환상을 그려내, 수많은 추종자들을 미혹시켰다.

공산주의 운동은 19세기 서유럽의 노동자 운동에서 기원했으며,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 선언> 등의 이론을 기초로 한다. 1917년 소련 공산당이 탄생한 후 여러 나라에서 공산당 정권이 수립됐다. 공산당 정권은 폭력적 혁명을 발동해 많은 곳에서 끊임없이 충돌과 불안을 조성했으며, 전 세계 사회 질서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래 인간의 천성으로, 나무랄 수 없다. 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것도 정상이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무신론, 계급투쟁, 증오, 폭력을 선전해, 인류가 몇 천 년 간 이어온 신앙, 문화와 전통을 완전히 훼손해 몰락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2. 공산주의의 배후

<공산당 선언> 첫 부분을 보면 ‘하나의 유령, 공산주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공산주의는 결코 광명정대한 학설이 아니다. 그것은 반동조직으로부터 기원했으며, 실제로는 ‘악마교’를 신봉했다. 그것의 배후는 마귀의 화신이다.

미국 국회도서관 관장이자 유명 역사학자인 잔무시 빌링던(Zhanmusi H. Bilingdun) 등 여러 학자의 체계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산당은 18세기 독일 바바리아의 일루미나티에서 기원됐다. 일루미나티의 설립자 아담 바이스하웁트(Adam Weishaupt)는 악마교의 신도로, 사단 루시퍼를 신봉했다. ‘정의자 동맹’은 일루미나티가 침투 및 장악하고 있는 외부조직이다. 1847년 6월, ‘정의자 동맹’은 런던에서 첫 대회를 열어 그 명칭을 ‘공산주의자 동맹’으로 변경했다. 같은 해 11월, 공산주의 동맹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선언문을 작성할 것을 부탁했다. 이로써 다음해 2월 21일 <공산당 선언>이 출간되었고 공산당 운동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공산당에서는 일루미나티의 사이비교 강령 및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교리를 계승하고 있다. <공산당 선언>을 보면, "공산주의자는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는 자신들의 목적이 기존의 모든 사회 질서를 전복해야만 달성될 수 있음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레닌은 “우리는 반드시 모든 술책, 음모, 기만, 간사함, 불법수단, 은폐 수단을 동원하고 진실을 감춘다”라고 말한바 있다.

잔혹하고 기만하는 것은 공산당 정권의 공통된 특징이다. 공산주의 학설은 ‘인간천국’을 건설한다는 이론으로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키지만, 실제로는 인류를 적대시한다. 이는 모든 공산주의 사상 ‘전도사’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최근 공개된 문헌과 학자 연구를 보면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은 사탄의 신도였거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사탄의 영혼을 지닌 자들이었다.
 

1) 귀신을 신봉하는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부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층의 껍질이 벗겨졌습니다. 나의 가장 성스러운 영(靈)이 이미 떠났습니다. 새로운 영이 반드시 진주해야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 마르크스의 아들 에드가가 1854년 3월 21일 마르크스에게 쓴 편지의 첫머리는 놀랍게도 ‘친애하는 마귀님께’라고 되어 있다. 칼 마르크스는 본래 기독교 신자였지만 대학시절 조안나 사우스코트 주재의 사탄교회에 가입하여 악마교의 일원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시와 창작한 극본에 여러 번이나 ‘하느님을 향해 복수하기를 갈망한다’라는 생각을 밝히며, 세계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냈다. 그는 <절망한 자의 저주>라는 시에서도 ‘저주와 운명이라는 고문 속에서 하나의 영(靈)이 내 모든 것을 앗아 갔다. 모든 세계를 뒤로 한 나에게는 증오만이 남았다”라고 언급했다.

마르크스가 학생시절 쓴 ‘울안엠’(Oulanem)이라는 희곡을 보면, 자신은 인류를 지옥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묘사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젊은 내 두 어깨는 힘이 넘친다. 불같은 기운으로 인류를 박살내겠다. 어둠 속 까마득한 지옥의 틈새가 너와 나에게 열려있다. 너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고 나는 활짝 웃으며 그 뒤를 따르겠다. 그리고 네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지. ‘내려와서 나와 함께 하자, 친구여!’”

마르크스는 독일인, 중국인, 유태인을 미워했는데, 그는 이들 민족은 모두 ‘행상꾼’이라고 여겼다. 그는 또 러시아인을 ‘밥통’, 슬라브인을 ‘쓰레기 인종’이며 ‘반동’ 종족이라고 부르면서 세계혁명의 폭풍으로 즉각 훼멸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류를 ‘쓰레기’라고 하면서 ‘저질과 거친 말’을 하는 ‘인간 망종’이라고 했다.

또,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에서 “무산계급을 위해 분투한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산계급을 ‘바보, 망나니, 엉덩이’, 흑인을 ‘백치’라고 불렀다.

사실상 마르크스는 모든 신령을 증오했으며 결코 ‘공산주의’를 신봉하지 않았다. 그는 ‘공산주의’를 올가미로 이용해 무산계급과 지식인들을 유혹하여 사탄교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을 뿐이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마르크스는 자신이 집필한  ‘공산당선언’을 ‘똥—더러운 책’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2) 잔혹한 레닌

1991년 11월, 베를린에서 망가진 레닌 동상이 실려 옮겨지고 있다.(Getty Images)

1917년 '2월혁명' 이후, 외국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러시아에 귀환해 '10월혁명'의 정변을 일으켜 임시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쟁탈했다. 공산주의의 인류에 대한 증오는 소련 공산당 시절부터 태동한 후 실질적인 폭정과 학살의 형태로 변천해왔다.

청년 시절 레닌은 사탄교를 신봉했던 마르크스 및 엥겔스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레닌의 친한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트로츠키가 저술한 <청년 레닌>에는 레닌이 16세였을 때 목에서 십자가를 떼어낸 후 그 위에 침을 뱉고는 그것을 발로 밟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사탄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식의 일종이다. 레닌과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던 작가 아리드나는 레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레닌은 사악한 사람이다. 그의 눈은 한 쌍의 이리와도 같은 사악한 생김새를 지녔다.'

‘혁명에 있어 성공하기 위한 믿을만한 수단은 바로 통치계층과 문화계층을 박멸하는 일이다.' 레닌은 정권을 쟁탈한 후 정확히 이대로 행했다. 1917년, 그는 ‘체카'라는 비밀경찰조직을 직접 조직했다. ('체카'란 '반혁명 방해공작 대처를 위한 국가특수위원회'로, ‘KGB'의 전신이다.) 레닌은 납치, 정찰, 판결 및 집행에 대한 절대 권력을 위임하며 적색공포정치를 이어나갔다. 1918년, 소련은 첫 번째 강제노동수용소를 설치했다. 그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 및 이후의 소련에서 노동수용소의 수량이 대폭 증가했다.

레닌이 직접 발의하고 정치국의 집단 결정을 통해 높은 문화 수준을 겸비한 지식분자들을 축출해 국외로 추방시켰고, 민주선거, 자유무역 등을 요구한 크론시타트 수병을 박해했다. 1922년, 레닌은 소련공산당의 11차 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멘셰비키주의를 공개적으로 주창하는 자들에 대해 우리 법정은 일률적으로 총살형을 내릴 것이다." 같은 해 8월, 소련 공산당은 <행정축출에 관한 법령>을 통과시켰으며 그해 말에는 20만 이상의 사람들이 추방되거나 해외로 망명을 떠났다.

차르 니콜라스 황제 일가에 실행한 총살형 사건은 레닌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일례이다. 1918년 7월, 구금됐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일가는 재판 과정 없이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의 명령 하에 총살을 당했다. 11명이 사형에 처해졌으며 이들의 사체는 불살라지거나 황산에 의해 용해됐다. 차르 니콜라이는 레닌의 망명 시절 그에게 자유롭게 생활할 조건을 제공하며 매월 8루블의 보조금을 제공한 바 있다.

레닌의 잔인하고 광기어린 면모를 발견한 러시아 사상가 플레하노프가 임종시 남긴 <정치유언> 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레닌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악마와 동맹을 맺는 것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레닌은 절반의 러시아인을 행복한 사회주의 미래로 몰아가기 위해 남은 절반의 러시아인을 죽일 수 있다.”
 

3) 독재자 스탈린

1990년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시 중심 국가도서관 앞에 세워진 스탈린 조각상을 옮겨가고 있다.(Getty Images)

레닌의 후계자 스탈린은 이와 같이 말했다. "가장 큰 기쁨은 누군가와 우애를 쌓은 후 그가 신의에 가득찬 상태로 자신의 머리를 당신의 가슴에 파묻는 순간 한숨에 그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쾌락이다."

스탈린은 15세에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기 시작하며 신을 저버리고 마귀를 좇기 시작했다. 그후 그가 혁명가의 신분으로 작품을 저술하며 처음 사용한 필명은 '악마'였으며 '악마 같은'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1912년, 그는 ‘철인'이라는 뜻의 ‘스탈린'이라는 필명을 갖게 된다. 레닌마저도 스탈린에 대해 “당내에서 가장 냉혹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는 평을 남겼다. 소련 공산당 주요인사 부하린은 스탈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 바 있다. “그는 사람이 아닌 마귀다.”

1930년, 소련은 교정노동수용소 관리본부 ‘굴라크'를 설치한다. 소련의 강제수용소는 이후 각 사회주의국가 강제노동수용소의 전형이 된다. 이러한 노동수용소는 극단적으로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이 높다. 스탈린이 1953년 사망하기 직전 소련 전역에는 170개의 노동수용소가 각지에 분포해 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1930년에서 1940년까지 기아, 과다노역, 비인간적 대우 등으로 인해 50만 명 이상의 굴라크 수용자들이 사망했다. 이중에는 수많은 시인, 작가, 학자, 과학자, 그리고 예술가들이 포함돼 있었다.

스탈린의 통치기간동안 대기근으로 인해 800만명 이상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1930년대의 대숙청은 당, 정부, 군, 중앙, 지방간부에 대한 전면적인 숙청 및 탄압으로 발전해갔으며 총 200여만 명이 탄압 당했다. 소련 정치국 위원 야코블레프의 추산에 따르면 스탈린 폭정 하에 사망한 사람은 약 20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4) 폭군 마오쩌둥

중국 예술가 가오선(高兟), 가오창(高強)의 작품 <참회하라! 마오쩌둥(懺悔吧!毛澤東)> (대기원)

마오쩌둥(毛澤東)은 중국공산당이 신단(神壇)위에 모셔둔 폭군이다. 마오쩌둥은 평생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처럼 폭력에 대한 기벽이 남달랐다. 투쟁을 좋아한 마오쩌둥은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며 사람과 싸우니 그 즐거움은 끝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의 '투쟁'은 중국에 극심한 재앙을 가져왔다.

마오쩌둥의 집정기간동안 일련의 정치운동이 벌여왔다. 토지개혁, 반혁명진압운동(鎮反), 삼반오반운동(三反五反), 정풍반우운동, 대약진운동, 반우경운동, 그리고 문화대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이 황당무계한 광분은 백만에서 천만에 이르는 중국인의 무고한 사망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이끌었으며 동시에 중국전통문화와 중국사회의 도덕적 근본을 파멸시켰다. 참으로 전대미문의 참상이라 할 수 있다.

1957년, 마오쩌둥이 소련을 방문했을 때, 당시 세계 대부분 국가의 공산당은 대표를 모스크바 회의에 파견했다. 마오쩌둥은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기껏해야 핵전쟁이지. 핵전쟁이 무슨 대수인가? 세계 27억 인구 반이 죽어도 나머지 반이 살아남고, 중국인 6억중 반이 죽어도 3억이나 살아남는데 그게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마오쩌둥이 스스럼없이 내뱉은 발언은 바로 공산주의자들의 생명 경시 풍조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공산주의 폭력의 전통은 일맥상통하다. 공산당이 존재하는 한 공산당의 폭력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수천 년의 역사적 흐름을 총괄적으로 살펴보면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하늘을 경외하고 천지신명을 신봉했으며 천지 자연의 이치가 인간 세계 선악을 가늠한다고 믿어왔다. 따라서 사람들은 생명을 귀히 여기고 남의 고통에 공감했으며 항상 자신의 언행을 살폈다. 이는 인간의 도덕적 수준과 사회질서를 유지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공산당은 근본적으로 하늘이나 신과 부처에 대한 신앙을 파괴했으며, 포악하고 오만하며 도덕적 하한선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지도자를 신단에 모셔두고 경배한다. 또한 정권과 권력을 이용해 이를 강제집행한다. 마오쩌둥이 인민으로 하여금 신이 아닌 자신을 믿도록 한 것처럼 말이다. 이는 철저한 악마숭배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의 블랙리스트(The Black Book of Communism)'의 통계에 따르면, 20세기 공산주의 혁명의 희생자는 1억 명 정도로 그중 소련에서 2000만 명, 중국에서 6500만 명, 베트남에서 100만 명, 북한에서 200만 명, 캄보디아에서 200만 명, 동유럽에서100만 명, 라틴아메리카에서 15만 명, 아프리카에서 170만 명, 아프가니스탄에서 15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집권하지 않은 곳에서도 국제공산주의운동의 희생자는 1만 명에 다다른다. 많은 학자들은 이 수치들이 실제 사망자수보다 훨씬 적으며 중국만 해도 최소 8000만 명이 사망했다고 밝힌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니라면, 인류에 대해 극한 원한을 품은게 아니라면, 어찌 이러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공산주의가 집권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동일하게 이같은 비극이 펼쳐졌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러한 공산당 지도자들은 일찌감치 극악의 살육귀, 가학적 날강도로 여겨졌을 것이다. 즉, 공산당은 조직형태상 불량 범죄집단이며, 그 배후는 악마의 화신이다.

20세기 공산당 정권의 박해로 인한 사망자 수 (표: 대기원자료)

 

편집부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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