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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보도] 공산주의는 출로가 아닌 파멸의 길이다(하)

기사승인 2017.03.07  15: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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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당-국가 체제' 하에서는 국가주석마저도 언제든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자료사진)

3. 공산주의의 '당-국가 체제'

공산주의 국가 체제는 당이 국가 위에 군림하는 '당-국가(party-state) 체제(黨國體制)'이다. 국가 시스템 전체에서 공산당이 있지 않는 곳이 없다. 당은 모든 행정기구, 종교단체 및 사회세력 위에 군림한다. 당은 진정한 정책 결정자다. 당이 모든 경제적 자원, 개인의 성장 기회, 심지어 사람의 사상까지도 통제한다. 당성은 보편적인 인성을 초월하고, 당의 수요가 무엇보다 높으며, 당의 정확성에 대한 도전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의 지도자들도 자신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들은 끊임없이 숙청, 공포조성 등의 방법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제압한다. 공산당 초기에 그들은 공격대상에게 '수정주의', '트로츠키파 분자', '반혁명' 등의 누명을 뒤집어 씌웠으며,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국가정권 전복 선동죄'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마오쩌둥 자신도 '대약진운동'이 과도하게 급진적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으나 펑더화이(彭德懷)가 이를 지적했을 때 그는 무조건 펑더화이를 타도하겠다고 결심한다. 그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만약 펑더화이가 마오쩌둥보다 더 정확하다면, 이는 펑더화이가 인민을 '공산주의 유토피아'로 이끌 자질이 더 충분하다는 뜻으로 마오쩌둥이 그의 최고지도자 자리를 펑더화이에게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당신이 최고지도자와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면, '영도권 찬탈시도'라는 오명이 당신의 몫이 된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류사오치(劉少奇)가 공격을 당한 것 또한 그가 1962년 '칠천인대회'에서 당의 각급 간부를 향해 그가 마오쩌둥보다 옳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이로 인해 부득불 2선으로 후퇴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마오쩌둥의 재기 후 류사오치는 바로 죽음으로 내몰린다.

집권 과정 중 착오와 죄행이 끊이지 않았던 공산당은 무수한 피의 대가를 졌다. 따라서 공산당은 언제라도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나 권력을 잃었을 때 자신의 죄행과 책임에 대해 추궁당할 것을 두려워한다.

공산당은 바로 이러한 '불안감' 때문에 자신의 인민을 감시하는 것이며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묘사한 '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계신다'와 같다) ‘일언당(一言堂·한 사람의 말에 모두가 동조하는 것)’의 선전 시스템으로 자신을 미화하며 당의 폭력을 변호하고 인민이 소리를 내는 것을 금지한다. 내부에서는 '당성(黨性)'을 강조하며 당의 영수의 의지가 관철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세뇌교육을 통해 인민을 노예화하며 '당의 지도'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4. 대내 탄압

'당-국가 체제'의 건립과정은 폭력과 거짓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민에 대한 대내적인 탄압은 공산당 정권의 통용수단이다.

'10월혁명' 이후, 1917년 11월, 러시아 전국제헌회의 선거가 있었다. 레닌의 볼셰비키당의 득표수는 4분의 1에 불과했다. 이에 분개한 레닌은 총기무력으로 입헌회의를 해산했으며 폭력으로 반대파 및 잠재적 반대파로 의심되는 모든 인물을 숙청한다. 집권 첫 달에만 수십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 1918년 6월, 소련의 공산주의정책 강제집행으로 경제대붕괴 현상이 발생한다. 중국 본토 학자들의 연구논문 기록에 의하면 “1921년에 들어 러시아의 중공업 생산량은 1913년의 20% 수준으로 하락했고,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75%의 인구가 사망했으며, 모스크바의 인구는 50%로 감소했다.'

레닌은 민중의 불만의 소리를 제압하고자 공포정치를 시행한다. 1918년부터 1922년 2월까지 이로 인해 200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한다. 스탈린의 집권 후에는 더욱 끔찍한 대숙청이 전개된다.

정부에서 군대까지, 전체 당원의 반 이상이 체포 및 숙청을 당했다. 군대 고위부 고급장교, 일급집단장교, 이급집단장교부터 군단장, 사단장까지 전 계급의 군관이 총살을 당했으며, 사망자 비율은 60%에서 심지어 100%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숙청운동은 중국에서도 동일하게 펼쳐졌다. 마오쩌둥이 정권을 탈취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일으킨 '가오강(高崗)사건'부터 '문화대혁명'까지, 공산당을 대신해 정권을 탈취한 이들은 불운을 면치 못했으며 무수한 일반인들도 숙청과정 중에 참혹한 불행을 겪어야만 했다.

공산주의는 약육강식의 '사회다윈주의(다윈의 생물진화론을 사회현상에 적용, 인간 사회도 생존경쟁이나 적자생존으로 점차 진화된다)'를 신봉한다. 최고 권력층은 민주적 선거절차의 권력 이양 과정을 거치지 않으며, 중국 고대의 '군권신수(君權神授)'의 신성한 권력 수여 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 권력은 바로 폭력과 기만을 더욱 잘 활용하는 자에게 돌아가는 구조이다.

따라서 스탈린, 마오쩌둥, 장쩌민에서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 권력은 '불안감'이 의심을, 의심이 숙청을, 숙청이 학살을, 학살이 더 심각한 '불안감'을 낳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2011년, 중국공산당이 국내 '안정 유지'를 위한 대내진압에 지출한 비용은 군비를 초과했으며, 이는 공산당과 중국 민중이 전쟁상태에 처해있음을 나타낸다. 공산당이 민중을 진압하는 데에 투입되는 자원이 대외적으로 국가영토와 주권을 보위하는 데에 필요한 자원보다 많아야 한다고 여기는 꼴이다.

공산당의 학살 기제는 일단 발동되면 멈추기 어렵다. 더 많은 학살을 통해서 더 큰 공포를 조성해 지난 학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지 못하도록 막는 구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공포 가운데 사람들의 불만이 잠시 억제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불만은 다음번이 되면 훨씬 강렬하게 폭발한다. 즉, 다시 더 거대한 학살을 통해 또다시 이를 진압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는 공산당 폭력정권이 해결할 수 없는 저주의 굴레이다.
 

5. 국내외의 기만

2001년 1월 23일, 중국 CCTV는 장쩌민 집단의 지시를 받고 톈안먼 광장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분신자살 사건을 위조해 파룬궁을 모함했다. 사진은 CCTV가 가설한 스튜디오다. (동영상 캡처)

단순히 폭력에 의존하는 정권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그래서 기만이 등장해 폭력의 윤활제 역할을 한다. 소련공산당이나 중국공산당과 같이 정권을 비교적 오래 유지한 공산당들은 모두 기만술에 정통했다.

중국은 정권을 탈취하기 이전 '민주'라는 구호를 주창하며 각종 친미적 성향의 글을 발부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들이 속아 넘어가 옌안(延安)을 찾고 반(反)장제스 대열에 합류했다. 미국마저 중화민국에 대한 지지를 중단했으며, 결국 국민당이 대만으로 패퇴하고 중국대륙은 공산당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이후 중국공산당은 체계적인 역사왜곡을 진행한다. '만리대탈주(萬里大流竄)'의 도피과정을 ‘북상항일(北上抗日)’의 장정이라고 선전하며, 산베이(陕北)에 숨어 국민당의 항일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던 공산당을 '항일전쟁의 버팀목'으로 미화한다.

중국인끼리 동족상잔을 펼쳤던 내전을 '해방전쟁'이라 하고, 3000만 명이 아사한 '대기근'의 인재를 '3년 자연재해'로 왜곡한다. 10년 문화대혁명의 책임을 전적으로 '4인방'에게 돌리고 '천안문 대학살'을 '반혁명 폭동에 대한 제압'으로 포장하며, '진·선·인(真善忍)'의 가치를 수련하는 파룬궁 수행자들을 악마화한다.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노동교화소로 보내거나 고문에 처하고, 심지어 '생체장기적출'이라는 인권 재앙사태를 '중국의 인권이 가장 좋았던 시기'로 묘사한다. 또한 뻔뻔스럽게도 중국이 '법치국가'임을 선전한다.

대외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후설(喉舌, 당의 목구멍과 혀)’이라고 할 수 있는 매체들은 대대적으로 거짓정보를 방출하고 가짜뉴스를 만들며 국제사회를 기만한다. 또한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爲人民服務)'고 표방하면서 환경파괴 및 인민들의 권익 탈취와 맞바꾼 GDP 성장수치를 과시한다. 외부의 지적이 들어오면 이에 관련해 언제, 누가 중국에 입국할 수 있는지는 당이 결정한다. 또한 입국자가 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누구와 만날 수 있는지 여부 전체를 당이 결정한다. 동시에 매년 '소프트파워'를 명분으로 100억 달러를 전면적인 '대외선전'에 사용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외부에 빨간 공산주의 의식을 침투시키며 대내적인 억압정책을 해외에까지 연장한다. 이들은 서양 매체의 언론자유에까지 손을 뻗치며 민주사회의 토대를 흔들고자 한다.

구소련과 중국에서 공산주의는 국가정권을 탈취했으며, 서양의 수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공산주의 사조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예를 들어 이러한 국가들에서 실제로 공산국가와 같은 폭력 형식이 등장하진 않았으나, 고세율 복지정책 등은 '합법'적으로 부를 갈취하는 행위로, 사실상 공산주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이외에도 공산주의 사상에 심각하게 물든 국가들의 경우 경제발전 정체, 민족분열, 전통과의 괴리와 같은 문제들이 등장했다.

 

6. 반(反) 전통, 반(反) 인륜적 수법

공산당의 정치, 경제, 법률 및 교육 체제는 모두 전통에 반(反)하는 것이다. 탄압의 협력 수단으로 그들이 취하는 전형적인 선전 수단은 지부반괴우(地富反坏右:지주, 부농, 반혁명, 괴뢰 분자 및 우파 등의 통칭), 자산 계급, 수정주의자, 6.4 폭도,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등 특정단체를 요마화(妖魔化, 겁이 날 정도로 추악하게 묘사)하여 국민들이 이들을 증오하도록 선동한다. 중국공산당의 문화선전 계통은 일찍이 ‘반(反)인류’ 혹은 ‘인종 말살’의 선전기계로 전락했으며, 그들이 주창하는 도덕관 또한 반인류적이다.
 

(1) 경제적 반(反) 전통 이론

중국의 전통사회에서 ‘군자는 재물을 좋아해도, 도리를 지켜 그를 얻는다(君子愛財, 取之有道)’. 사람은 성실한 노동과 재능으로 스스로를 부양해야 하며, 장사를 해도 공정하게 거래하고 어린이나 노인을 속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경제 정책은 그 태생이 ‘약탈’과 ‘변칙적 약탈’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누가 자신의 합법적인 재산, 노동의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길 원하겠는가? 사람들이 선량함과 동정심에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아름다운 인성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한 국가정권 또는 누군가가 타인의 정당한 재산을 공공연하게 빼앗고자 한다면, 이는 기본적인 인성과 도리를 위반하는 행위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공산당의 각종 강제철거, 민영기업 및 외국기업에 대한 고액 과세, 도로와 교량 등 인프라 시설에 대한 비용 징수, 온갖 벌금, 자연환경 파괴, 세계 유명 브랜드 무단 ‘도용’ 및 덤핑 등 행위는 모두 ‘약탈’의 또 다른 형태이다.

서방사회에서는 자유롭고 평등한 경쟁을 수호하기 위해, 법률이 반드시 공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법률 제정이 필요한 경우, 그 핵심 가치는 국가의 전통윤리 및 법률과 일맥상통해야 한다. 이로써 경제와 사회형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는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유지한다.

이에 반해 현재 중국공산당의 ‘약탈’은 전혀 공정함을 담고 있지 않다. 이런 공산경제 이론은 중국의 전통사회든 현대의 자유사회든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
 

(2) ‘반(反) 인류’적 도덕관

티베트 승려에게 고깔모자를 씌워 거리에 끌고 다니며 비판 대회를 하는 모습 (자료사진)

도덕은 ‘시비와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신의 계명 또는 종교 경전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로 불리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에게 불성과 마성, 즉 선악이 공존한다고 보았다. 바른 종교 신앙은 인간의 악한 마음을 단속하여 없애고, 선한 마음을 채우고 키워나가는 데 주력한다. 악한 마음을 깨끗이 제거했을 때, 사람은 천국으로 귀의할 수 있다. 인성 중 선한 부분은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이를 ‘천양(天良, 타고난 착한 마음)’이라 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별도의 도덕체계를 만들고 ‘공산주의 도덕’이라 명명했다. ‘공산주의 도덕’의 가장 주요한 부분은 ‘원한’을 만들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적에 대해서는 엄동설한처럼 냉혹하고 무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레이펑(雷锋)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정권탈취 단계에서 공산당은 현 통치자에 대한 증오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정권을 탈취한 후에는 국민들 사이에 증오를 조장하여 민중들이 단합하여 공산당에 대항하는 힘이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때문에 마오쩌둥(毛澤東)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지속적 혁명 이론’, ‘계급투쟁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말해야 한다’, ‘문화대혁명은 7-8년에 한 번씩 진행되어야 한다’ 등등을 말했다.

1950년대의 공산당 ‘반혁명 진압’ 운동의 현장. (자료사진)
1953년, 신장 푸캉(阜康)에서 군사관제 인원이 ‘지주’와 ‘반혁명 분자’를 총살하고 있다.(National Archives)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작품 <1984>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공산국가의 사람들은 매일 오전 11시에 모여서 2분가량 증오 훈련 의식에 참석하고, 화면에 나타난 당의 적을 향해 고함치기, 욕하기, 마음속의 공포와 분노 표출하기 등 행위를 해야 한다. 사실 공산국가에서는 이와 같은 황당한 장면이 60여 년 동안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문화대혁명 당시 군중의 격앙된 감정에서 쏟아져 나온 ‘XXX의 망할 머리통을 깨부수자’라고 외치는 것에서부터 문화대혁명 이후의 ‘옌다(嚴打·엄하게 처벌함)’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6.4 폭도(暴徒)’를 향한 먹칠하기, ‘진(真), 선(善), 인(忍)’을 믿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자에 대한 비방으로 변화하였다. 타이완, 일본, 미국과 ‘나를 멸망시키려는 마음이 죽지 않는다’ 식의 ‘반중세력(反華勢力)’들에 대한 문공무혁(文攻武赫, 말과 글로 비난하고 무력으로 겁주다)은 모두 중국공산당이 키워놓은 ‘증오’와 관련이 깊다.

공산당은 매차 운동 때마다 먼저 증오를 선동하고 선전 기기를 통해 상대방을 ‘주자파(走資派, 중국공산당 내에서 자본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파’, ‘수정주의(修正主義)’ ‘흑오류(黑五類-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악질분자, 우파분자-역주), ‘반역자’, ‘사이비 종교 분자’ 등으로 먹칠하며 탄압의 빌미로 삼는다. 또한 이 같은 방식은 체계적으로 인류의 도덕을 타락시키고 인간의 동정심과 냉정한 판단력을 말살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태도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탄압으로 인한 피의 부채를, 적어도 도의적인 부채를 지게 한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치는 계급투쟁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계급투쟁이다” 라고 했다. 이는 공산당의 증오 훈련이 반드시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함을 뜻한다. 공산당의 각종 정치운동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외에도 인간의 타고난 도덕성, 즉 양심을 말살하려고 한다. 공산당 독제 체제하에 아이는 태어나서 반드시 정치운동을 통해 측은지심, 시비지심을 상실한 ‘비(非) 인간’으로 개조된다.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당성(党性)’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인성을 말살하는, 바로 ‘반(反) 인류적’인 존재이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공산당은 전 중국 범위 내에서 ‘4구 타파’ 운동을 전개했다. 사진은 사원의 불상을 불태우는 모습 (자료사진)

(3) 민족문화 말살

위의 분석에서 보듯이 공산주의는 경제적으로 반(反) 전통적이며 도덕적으로는 반(反) 인류적이다. 따라서 모든 전통적 도덕관은 공산당 정권에게 위협으로 인지된다. 폭정 하에서 전통문화는 도덕을 담는 매개체로서 난을 피하기 어렵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문화 훼손이 바로 중국에서 발생했다. – 오천년의 문화가 훼손되어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중국공산당은 정권 탈취 후 문화의 가장 정수 – 종교를 최우선으로 말살하기 시작했다. ‘반(反)혁명 진압’ 과정에서 종교 신도를 대규모로 학살했으며, 사이비 종교학자를 종교 내에 파견하여 교리를 왜곡했다. 1957년, 몇 개의 큰 종교 조직이 공산당의 지시 하에 ‘종교협회’를 설립한 후, 신앙 측면에서 파괴 작업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어서 문화적 측면에서 지식인들을 숙청하기 위해 ‘반(反) 우파’ 운동을 일으켰다.

1966년 무신론자들에게 세뇌되고 ‘홍기(紅旗)’ 아래서 성장한 청년들은 전통문화의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에서 초조하고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이때 공산당은 물질적 측면에서 중화 문화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전 중국을 휩쓰는 ‘4대 구습(破四舊, 구사상·구문화·구풍속·구관습) 타파’ 운동이 퍼져나가면서 ‘문화대혁명’의 막이 올랐다. 사찰을 허물고 불경을 태우며, 종교 신도 구타, 고완(古玩) 및 서화(字畫) 소각, 문물과 유적 파괴, 문화 엘리트 탄압 등이 이어졌다. ‘10년 대동란(十年浩劫)’은 문화의 겁난이고(文化巨難) 민족의 비극이다(民族之殤).

세계 그 어떤 국가의 정당도 중국공산당처럼 자신의 선조를 모욕하고 조국의 역사와 문화를 부정하는 경우는 없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을 돌아보면, 공산당의 체계적인 계획과 가공할 만한 방법, 정확한 계산, 악독한 수법 등은 일반 사람들의 이해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섰다. 이는 <9평공산당(九評共產黨)>의 ‘공산당은 사악한 령’이라는 논지를 증명한다.
 

맺음말

백 년 동안 공산당은 세계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국가에서 정권을 수립해 왔다. 1억 명이 학살당하거나 아사했고, 끊임없는 약탈이 있었으며, 밀고와 공포 정치가 곳곳에 존재했다. 공산당은 끊임없이 운동을 일으켜 국민을 핍박했다. 자유사회라면 이 같은 비극이 얼마나 황당무계한가? 그러나 공산주의 광풍 속에서 위와 같은 행위는 정당성을 얻었고, 모든 공산당 집권 국가에 예외는 없었다.

현재 대다수의 공산 정권은 이미 해체되었고 중국과 북한 등 극소수의 국가에만 여전히 ‘홍기(紅旗)’가 버티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진실은 은폐되고 찬양의 노랫소리는 여전히 높다. 적색의 토양은 여전히 존재하고, 독소는 여전히 자생한다. 여기서 우리는 공산주의가 인류에게 대체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반드시 심사숙고해 보아야 한다.

자유사회에서 살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어떤 출로 혹은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듯, 공산주의의 존재는 많은 국가를 해쳤다. 공산주의는 공산국가의 국민들로 하여금 막심한 고통을 겪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서방사회의 문명과 도덕의 근간을 잠식했다.

‘9평공산당’에서 공산당은 사이비 종교이자 사악한 령이 부체(附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산당은 모든 문제에서 교활함을 드러내며, 뒤에서 온갖 나쁜 짓을 하고, 각종 수법을 동원하여 인류를 파괴한다. 공산당은 그 사탄의 속성으로 인해 인류의 약점을 이용하여 전통과 멀어지게 만들며, 신을 등지게 함과 동시에 각종 속임수로 인간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폭력으로 육체와 영혼을 파괴한다. 공산당은 일체의 전통문화와 도덕을 반대하는데, 그 근본적인 목적은 인간을 훼멸하는 것이다.

공산당 정권의 백여 년 간에 이르는 허위선전으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을 남겼고, 많은 사람들이 그 본질과 유해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현존하는 공산당 국가에서 비극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공산당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에서 공산당은 ‘진(真), 선(善), 인(忍)’에 대한 박해를 18년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인간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미래는 선과 악 중에서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혼란, 충돌, 반성과 기대 속에서 인류는 격변의 직전에 이르렀다. 복잡다단한 세계정세, 혼란스러운 문제들에 대한 진정한 출로는 시비를 명확히 가리고 진상을 분별하며, 전통과 도덕의 회복에 있다. 한 세기가 넘게 인류를 위협해온 공산당의 배후는 악마의 화신이니 반드시 멀리하고 포기해야 한다. 공산주의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은 출로가 아닌 파멸의 길이다.
 

2017년 2월 9일
대기원 편집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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