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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전직 언론인 “中공산당 붕괴 조짐…머지않았다”(1)

기사승인 2017.05.02  17: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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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언론인 우보장 씨

주말에 서울 광화문과 인사동,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근처를 다니다 파룬궁 수련자들이 파룬궁 탄압을 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 판넬에는 중국과 전 세계에서 파룬궁 연공을 하는 수련자들의 모습, 그에 대조해 고문·생체장기적출 등 끔찍하게 탄압받은 수련자들의 모습이 있다. 많은 시민이 무심코 지나치다가 묻는다. “파룬궁이 뭐예요?”

파룬궁이 뭘까?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중국에서 탄압받는가?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체제에서 파룬궁 탄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국 언론인 우보장(呉葆璋)씨가 ‘4·25 파룬궁 수련생 평화대청원’ 날을 맞아 파룬궁 탄압과 중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 씨는 중공 관영언론 ‘신화’사와 프랑스 국제방송국에서 40년 근무했던 베테랑 기자다.
 

“파룬궁 탄압은 중국 정치현안의 핵심”

나는 중국 신화사에서 28년, 프랑스 국제방송사에서 13년 이렇게 40여 년간 신문기자로서 활동했고 2003년에 은퇴했다.

파룬궁에 주목한 것은 1999년 4월 25일,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난하이(中南海·중공 권력의 핵심구역)에서 평화적 청원을 한 날부터였다. 그때 나는 파룬궁 자체보다는 기자로서 중국 사회라는 배경 하에서 이 사건을 관찰했고 오랜 관찰의 결과, 파룬궁 탄압이야말로 중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치 문제의 핵심이라고 결론지었다.

왜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는가? 나는 70여 년을 살면서 중공의 60년 통치를 몸소 경험해 왔기에 중공을 매우 잘 안다고 자부한다. 중공이 일으켰던 수많은 정치운동은 모두 ‘정권 유지’를 위한 것이다.

매번 탄압과 박해, 사상개조가 자행된 정치운동은 비참한 결과를 남겼지만 그를 통해 중공은 언제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공산당에 불만을 가지거나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탄압과 인간개조로써 끝내 공산당을 찬양하도록 만들었다.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파룬궁 수련자(이하 수련자)만은 달랐다. 중공을 겨냥한 그들의 저항은 철저하고 일관되며 굴함이 없었다. 이것은 지난 60년간 있어 본 적 없는 것이다. 그들은 평화적 방법으로 폭력적이고 거짓된 중공의 본질을 드러냈으며 중국의 근현대사에 많은 ‘최초’를 만들어냈다.

수련자들이 해외에 설립한 <에포크 그룹(Epoch group)>은 중공 탄압의 피해자집단이 만든 최초 언론사다. <에포크 그룹>은 중공의 폭력과 사악함을 폭로했고 중국인을 일깨워 중국 내에서 공산당 탈당 열풍을 일으켰다.

그들은 또 장쩌민 전 국가주석 등 파룬궁 탄압 주동자들에 대한 형사고발 및 소송 캠페인을 추진해 전 세계 시민과 국제 사법계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역시 중공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심지어 ‘션윈예술단’을 설립해 문화예술로써 중국의 5천 년 전통문화를 부흥시키려 애쓰고 있다. 나도 그 공연을 봤는데 션윈(神韻)은 이미 중국 무대예술의 최고봉이다.

션윈 공연(사진=션윈예술단)


중국 사회에 번지는 중공의 붕괴 조짐

나는 중공의 60년 폭정 역사를 경험해 왔기에 중국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정치인이 아니므로 그것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 말할 수 없지만, 기자의 시각에서 명백하게 분석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중국 사회에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가 출렁거리고 있다. 그 파도는 파룬궁 수련자를 비롯해 중공에 탄압받았던 역대 피해자들과 급속한 중국경제 성장의 희생자들이 독립 기자와 변호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중국 사회를 전환하려는 물결과 같다. 이제 중화 대지에서 중공의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자유민주주의가 들어설 날도 머지않다고 본다.

중공은 1999년 수련자들에게 무시무시한 탄압을 시작하면서 3개월 이내에 파룬궁을 소멸시킨다고 큰소리치다가 나중에 1년으로 바꿨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파룬궁은 소멸하기는커녕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역사와 도의(道義)의 전환점에 서 있다.

중국 각 계층에 아직도 수련자들이 많다. 그들은 파룬궁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탄압의 위험도 무릅쓰고 주위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리고 있다. 2003년 프랑스 방송사에서 정년퇴직하기 전, 베이징 시청자가 집집마다 파룬궁 탄압을 알리는 전단이 꽂혀 있다고 내게 알려줬다.

중공 60년 역사 중 특히 후반 30년을 되짚어보면 중공의 절대적 권력이 심각한 부패를 조장했다. 예언가가 아니어도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역사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유럽의 일부 정치인은 중국의 변화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중공, 경제로써 정권 위기 모면하려 해

중공의 문제는 구소련 공산당(이하 소련)이 겪던 문제와 다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 원로들의 힘이 약해진 상태에서 취임했기에 그가 느낀 어려움은 현재 중공 내부에서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보다 훨씬 작았다.

소련과 동독의 붕괴에서 중공이 내린 결론은 “경제만 좋으면 정권 위기를 막을 수 있다”였다. 지난 20년간 중국의 고도성장은 중공의 이러한 계산 하에 추진된 것이다. 목숨을 걸고 경제 발전만 꾀하다 보니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극심한 소득 양극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정권만 유지되면 곧 문제 해결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경제적 함정에서 벗어나자 예기치 못한 사회적 함정이 나타났다. 중공의 독재 치하에서 이룩한 경제성장은 사회의 부를 정부 관료와 당원에게 몰리게 했다. 사실 독재 치하의 시장 개방은 조직폭력배가 도박장을 운영하는 것과 같다.

조금만 사고하면 중국에서 부패문제가 횡행하리란 걸 알 수 있다. 프랑스 사업가였던 내 친구는 중국에서 뇌물이 없으면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계속)

 

중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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