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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 왕조가 번영한 근본적인 이유는?

기사승인 2017.05.08  13: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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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시대 임안(臨安·지금의 항저우)의 성문. 왼쪽 아래에 코끼리를 몰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인터넷이미지)

중국에는 역대로 번영했던 왕조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남송 시대는 서민들의 생활 속 문화의 정수가 잘 반영되어 있다. 남송은 당시 주변국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 사절단이 끊임없이 방문했고, 심지어 중국에서 일생을 마치고자 하는 다른 나라 국왕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부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본질적인 부분이야말로 ‘중화 문명의 진수’ 였으며, 수천 년 동안 번영할 수 있었던 근본이었다.

일반적으로 중국 황제는 큰 궁궐에 살면서 강권 정치를 해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송 왕조의 수도 개봉(開封)의 궁궐은 규모가 별로 크지 않았다. 986년 송나라 태종은 궁궐을 확장하고자 유연한(劉延瀚)이라는 장수에게 민가의 해체를 명령했다. 이 장수는 중앙군의 지휘관인 황제의 심복 부하였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이 철거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황제의 요청을 거절했다. ‘송사(宋史·송나라 역사서)’에 따르면 황제는 그 뒤 궁궐 확장 계획을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황제라 할지라도 대신과 민중의 의견을 존중해야 했고 자기 마음대로 정치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민의를 존중한 송 왕조 시대에 평민에게도 일정한 권리를 줬다. 가장 낮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버려진 아이’도 국가가 보호하고 양육하는 등 사회 복지가 잘 구비된 나라였다.

 

이상숙 기자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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