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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왕치산 ‘갈등설’ 내막(상)

기사승인 2017.05.17  13: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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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과 그의 부패척결 선봉장인 왕치산은 청년시절부터 매우 가까운 관계로 알려져 있다.(Getty Images)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인민대표대회 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집권했고 리커창(李克強)은 총리직을 맡아 경제를 장악했으며, 왕치산(王岐山)은 기율검사위원회를 휘어잡고 부패 관료를 처벌했다. 리커창과 왕치산은 시진핑 주석의 부패 척결 호랑이 사냥의 주요 인물로, ‘3대 마차(三駕馬車)’, ‘시-리 체제(習李體制)’, ‘시-왕 체제(習王體制)’ 등의 용어가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해외에서 장쩌민(江澤民)파를 배경을 둔 언론은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간의 불화 소식을 흘렸으나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고, 최근에는 해외에서 시진핑과 왕치산 사이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 보도는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시진핑과 왕치산 사이의 관계는 도대체 어떠한가? 두 사람 간의 진실한 관계는 미래 중국의 정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중국 언론에 나타난 시-왕 관계

중국 18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 주석과 왕치산이 과거 청년시기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보도가 중국 언론에 다수 나타났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진핑이 부(副)성급 간부를 지내던 시절, 옌안(延安)시 옌촨(延川)현의 장쓰밍(張思明) 작가협회 주석은 옌촨현 량자허(梁家河)에서 시진핑의 옌안 지식청년 시절의 경력에 대해 인터뷰한 바 있다. 장쓰밍이 2002년 푸젠(福建) 성 성장이었던 시진핑을 방문할 당시, 시진핑은 그에게 1969년 농촌 하방(下放) 초기 베이징(北京)에서 옌촨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여정이 너무 길어 펑좡(馮莊)에 들러 왕치산에게 하룻밤을 신세진 적이 있는데 당시 두 사람은 한 이불을 덮고 잤다고 말했다. 당시 시진핑은 경제 관련 책을 한 권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왕치산에게 주고 왔다고 한다.

중국 매체가 시진핑과 왕치산의 밀접한 관계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시진핑과 왕치산이 정치적 동맹이라는 정보를 대외적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또한 뉴스보도의 세부 사항으로 볼 때 시진핑과 왕치산의 친밀한 관계가 진실함을 보여준다.
 

왕치산, 시진핑을 도와 장쩌민파 고위 관료 백 명 처단

중국의 기형적인 정치 체제는 일반적인 국가와 정부의 권력 조직 체계와 다르다. 중국 공산당의 체제하에 부패는 ‘창타이(常態·normal)’가 되어 버렸고, 중국의 뿌리 깊이 스며들었다. 시진핑 주석은 정상적인 법률 절차와 방법으로는 부패를 척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당내 기구인 중앙기율위원회(中紀委·중기위)의 힘을 빌려 부패와 맞설 수밖에 없었다.

왕치산은 금융업, 지방 고위관원, 중앙 부처와 국무원 총리를 거치면서 ‘소방대장’ 또는 ‘청도부(清道夫)’로 불렸다. 중국 공산당 18차 당대회 후, 시진핑, 왕치산은 강력한 부패 척결 호랑이 사냥에 나섰고, 당내, 군대 및 지방 성(省)과 시 등에 장기간 자리 잡고 있던 장쩌민 세력을 와해시키는 데 주력하면서 새로운 인사 배치를 완성했다. 4년여 시간 동안 왕치산은 시진핑을 도와 당·정·군(黨政軍) 고위 관료 100여 명을 낙마시켰으며, 이 중 대다수가 장쩌민 일파의 인물이었다. 정국급(正國級·국가지도자급) 저우융캉, 부국급(副國級·부총리 이상의 국가직) 쑤룽(蘇榮), 쉬차이허우(徐才厚), 궈보슝(郭伯雄) 등등이 이에 속한다. 지금까지 부부급(副部級·차관급) 이상의 관료 153명, 군대와 무장경찰 내의 부군급(副軍級.영관급) 이상의 관원 59명, 총 212명을 척결했다.

왕치산의 반부패 척결은 중국의 각 이익 집단을 건드렸는데, 특히 장쩌민 집단 가족의 기득이익을 건드렸다. 때문에 장쩌민 일파는 왕치산에 대한 여론 공격을 끊임없이 진행했고, 심지어 여러 차례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왕치산, 수차례 암살 위기에 놓여

홍콩 <동향(動向)>지 2016년 12월 호 보도에 따르면, 2016년 11월 말 왕치산은 차를 타고 산시(山西) 성 양취안(陽泉) 시를 순방 중이었다. 그가 타고 있던 차량 행렬이 타이위안(太原) 시 교외를 지난 후 앞서가던 SUV 차량이 진중(晉中) 시 고속도로 교차로에서 약 200m 떨어진 지점에서 컨테이너 트럭 한 대와 충돌했고, 해당 SUV 차량은 전소됐다.

보도는 이 충돌 사건이 왕치산이 중앙기율위 서기로 재임한 이래 공식적으로 파악된 27번째 암살 시도라고 했다. 당시 컨테이너 차량은 고의로 교차로 입구에 정차하고 기다리던 중이었다고 한다.

이 보도에 따르면, 왕치산이 중앙기율위 서기직을 맡은 이래 최소 17차례의 무장, 기계, 차량 등을 이용한 암살 시도가 있었으며, 우편, 소포를 이용한 화학약품 음해가 8차례 있었다고 한다. 이 밖에 허베이(河北), 쓰촨(四川) 등에서 초대소의 음용수나 죽 등에 독을 탄 사례가 각각 한 차례 있었다.

2015년 3월 27일에서 28일, 왕치산은 허난(河南) 성에 조사를 나갔다. 3월 28일 새벽 4시, 왕치산 일행을 맞은 허난성 위원회 초대소가 정전됐고, 4시 20분에 보조 장비로 다시 가동됐다가 5시 10분경 재차 정전됐다. 같은 시각, 성 위원회 보위부 전용 차량 3대가 차고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왕치산 일행은 당일 저녁 정저우(鄭州)시 경비구역 초대소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변경했으며, 중앙 보위부처가 이 사건을 3.28 폭력 암살 사건으로 규정하고 조사를 진행했다.

홍콩 언론은 2013년 8월 말 왕치산이 장시(江西) 난창(南昌)에서 겪은 암살 위험을 보도하기도 했다. 왕치산 일행이 난창 지역을 시찰할 당시, 그들이 묵었던 성(省) 초대소 제5원의 전화, TV, 전기가 돌연 50분가량 꺼졌다. 그 사이 두 명이 제5원으로 잠입했다가 왕치산의 수행 경호원에게 잡혔다. 이들 두 명은 잡혔을 당시 자살을 기도하면서 자신들은 ‘민원을 하러 온 사람’들이며, 왕치산에게 ‘억울한 사건’을 해결해 달라 부탁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들 두 사람은 공안 계통에서 제명된 경관으로, 고용된 암살자임이 드러났다.

과거 여러 언론이 폭로한 바와 같이 후진타오(胡錦濤) 전(前) 국가 주석도 장쩌민 일파의 암살 시도를 세 차례 겪은 바 있다. 시진핑 주석의 경우 18차 당대회 이후 최소한 6차례 암살 시도를 받았고, 이후 조사된 사실에 따르면, 모두 내부 인사가 암살자를 고용한 사건이었다.

<하편에 계속>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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