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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위고로 환생해 역사적 대업 이뤄

기사승인 2017.06.18  11: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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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과 위고

중국 고전 《신승전(神僧傳)》에는, 삼국지에서 유명한 제갈공명이 죽은 후에 다시 당나라에서 환생해 역사적 위업을 이루었다는 설화가 있다. 제갈공명은 공자와 함께 후세 중국에 미친 영향이 큰 인물이다. 전략가와 정치가로서 제갈량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때도 있지만, 그는 지략과 지성충의(至誠忠義)의 인물로 지금까지 존경받고 있다. 그는 전쟁에서 살생을 원하지 않아 싸우지 않아도 이기는 전략적 싸움을 원했고, 우주 만물과 동화되는 완전한 인간이 되길 노력했다. 지혜롭게 충성을 다했던 그의 이런 사상은 환생한 뒤에도 이어져 충성을 다했고, 애민정신으로 시작된 낙산대불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제갈량이 당나라 때 위고로 환생하다

위고(韋皋)는 중국 당나라 때인 서기 746년에 명문가인 위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들의 탄생을 기뻐한 부모는 위고가 태어난 지 3일 후, 여러 스님을 청해 설법을 들었고 탄생을 축복했다. 그때 청하지 않은 인도 스님이 갑자기 찾아 와 위고에게 다가가 “오랫동안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기 위고는 스님의 말을 알아들은 듯 빙그레 웃어 보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연유가 있을 거라 짐작한 위고의 어머니는 몇 번이나 스님에게 캐물었다. 그러자 스님이 사정을 말했다.

“이 아기는 제갈공명이 환생한 것입니다. 제갈공명이 무후(武侯)로 봉해졌기에 장군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아기는 촉(현재의 쓰촨성)의 장군으로서 장래 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 후 위고의 삶은 인도 승려의 예언과 들어맞았다. 명문 귀족 출신인 위고는 다재다능했고 학문에도 뛰어나 순조롭게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러던 중 수도 장안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서기 783년, 회서절도사였던 이희열(李希烈)이 조정에 반기를 들자, 황제 덕종은 구원군을 보내 반란을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구원군 병사들은 악천후와 형편없는 대우에 불만을 품고 모반을 일으켜 수도 장안을 점령했다. 반란군은 한때 절도사를 역임한 주자(朱泚)를 대진황제(大秦皇帝)로 추대했고, 놀란 덕종은 봉천(현재의 산시성 젠현[陝西省乾県])으로 달아났다.

당시 농주(현재의 산시성 룽현[陇州])에 있던 위고는 기지를 발휘해 반란군을 평정한 뒤 덕종 황제를 장안으로 귀환시켰다. 이 공로로 그는 좌금오위장군(左金吾衛將軍)에 올랐고, 후에 검남서강절도사(劍南西川節度使)로 임명되어 옛 촉 땅을 관할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군인으로서 화려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중국의 병법은 무용(武勇)뿐만 아니라 지략과 책략도 중시한다. 장수로서의 덕목을 고루 갖춘 위고는 절도사에 오른 후 주변의 위협에 대응하는 여러 방법을 강구했다. 덕종 15년에 당 서쪽에서는 위고가 지휘하는 당군과 남조가 연합해 토번과 크고 작은 군사충돌을 일으켰지만, 위고의 지휘로 매번 토번을 제압했다.

위고는 옛 촉나라에 21년간 머무르며 토번군 48만을 격파했다. 적의 지휘관, 성주, 관리 1500명 이상을 생포했고, 전리품으로 가축 25만 마리 이상과 무기 630만 점을 취득했다.

이렇듯 위고는 전장에서 빛나는 공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내정에도 힘을 썼다. 그리하여 촉 사람들은 자신들을 잘 다스린 위고를 흠모해 그의 상만 보아도 절을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낙산대불(樂山大佛)을 완성한 위고

위고가 태어났을 때 만난 인도 스님을 통해 알 수 있듯 그는 불가와 인연이 깊었다. 평생 부처님을 섬긴 그는 당시 모든 백성들의 염원이었던 낙산대불(樂山大佛)을 완성했다.

낙산대불은 당 현종(713) 때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고대 낙산에는 세 개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물이 깊고 유속이 빨라 배가 거센 물결에 자주 전복됐다. 특히 여름에 물이 불어나면 전복사고가 늘어나 사망자가 속출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해통선사(海通禪師)가 거센 물결을 잡기 위해 부처님의 법력을 빌고자 암석에 불상을 조각할 계획을 세웠다.

대불을 조각한다는 소식을 들은 유능한 석공들이 전국에서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모여들었다. 석공들이 불상 조각을 시작했고, 천지를 뒤흔드는 석공들의 징소리에 암석 아래에 살던 요괴들은 혼비백산했다. 그 후 하루가 다르게 불상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면서 물살의 세기도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낙산대불의 두상

그러나 대불이 어깨부분까지 완성되었을 때 해통선사가 사망하는 바람에 작업이 중단되었다. 긴 세월이 지나 검남서천절도사 장구검경(章仇兼瓊)이 중단된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겨우 불상의 무릎까지 완성했을 때, 장구검경이 다른 곳으로 부임하게 되어 또다시 작업이 중단되었다.

40년 후 위고가 다시 대불 작업을 이어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지 90년 후인 803년에 마침내 대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낙산대불은 높이 71미터의 세계 최대 석조 불상이다. 이 미륵부처 좌상은 양손을 무릎에 놓고 발을 연꽃 위에 올려놓고 있다. 낙산대불은 동쪽을 향해 흐르는 강물을 앞에 두고 지금도 담담하게 중생을 지켜보고 있다.

이처럼 고대문물들 중에는 경이로운 유물과 유적이 많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 범위를 벗어난 신화와 전설의 경우 그저 재미난 이야기로만 여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이타적인 삶을 숭고하게 여겼던 옛사람의 정신을 보아낼 수 있다면, 물질문명에 미혹돼 잃어버린 인간 본연의 정신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고전 ‘神僧傳’ 참고

공영자 기자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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