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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버지니아 비상사태…‘로버트 리 장군’에 대한 오해 때문?

기사승인 2017.08.13  15: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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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쿠 클럭스 클랜(KKK) 등 극우파 시위대와 시위대를 반대하는 흑인 인권단체 등 극우반대파 시위대가 맞붙어 서로 물병과 돌을 던지고 몸싸움을 벌이면서 고함과 비명이 가득했다. (사진=Getty Images)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사령관이었던 로버트 에드워드 리(Robert Edward Lee) 장군의 동상 철거를 둘러싸고 미국 버지니아 주(州) 샬러츠빌(Charlottesville)에서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인종차별 시위대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대 간에 폭력시위가 벌어져 피해가 커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각) 테리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는 이번 시위로 시민 3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또한 버지니아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인종차별 시위대를 향해 “집으로 돌아가라”면서 “부끄러운 줄 알라. 당신들은 애국자인 척 하지만 애국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번 시위는 샬러츠빌 시의회가 이멘서페이션 공원에 있는 리 장군 동상 철거를 결정하자 백인우월주의자와 극우주의자들이 반발하면서 일어났다.

리 장군은 미 남북전쟁을 이끈 명장으로 추앙받아 미 전국 곳곳에 그의 동상이 설치돼 있었다.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교회에서 백인 청년이 흑인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뉴올리언스시(市)는 남부연합 기념물 철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먼저 남부연합기(旗) 폐지 법안을 제출하고 이어 기념 동상 철거를 진행했다. 자유지 전투(Battle of Liberty place) 기념비, 제퍼슨 피니스 데이비스((Jefferson Finis Davis) 동상, 피에르 귀스타브 투탕 보르가르(Pierre Gustave Toutant-Beauregard) 동상에 이어 로버트 리 장군 동상까지 철거했다.

이에 따라 샬러츠빌 시의회도 지난 4월 리 장군 동상을 철거‧매각하는 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철거 반대 소송이 제기되면서 10월까지 6개월간 철거가 중지된 상태다. 시의회는 해당 법안에서 다른 남부군 장군이었던 스톤월 잭슨 사령관 동상 철거와 함께 두 장군의 이름을 딴 리 공원과 잭슨 공원의 명칭도 해방공원(Emancipation Park), 정의공원(Justice Park)으로 바꾸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날 시위에는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쿠 클럭스 클랜(KKK) 등 극우파 시위대와 시위대를 반대하는 흑인 인권단체 등 극우반대파 시위대가 맞붙어 서로 물병과 돌을 던지고 몸싸움을 벌이면서 고함과 비명이 가득했다. 극우반대파 시위대가 평화행진 중 승용차 한 대가 시위대로 돌진해 30대 여성 한 명이 숨지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6000여 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추종하는 로버트 리 장군은 정작 백인우월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연방 해체와 노예제도를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고향 버지니아가 남부연합에 가입하기로 결정하자 자신의 고향에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남부연합에 가담했다.(사진=Getty Images)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추종하는 로버트 리 장군은 정작 백인우월주의자가 아니었으며 그의 높은 도덕심과 인격으로 지금까지 미국의 명장으로 손꼽혀왔다는 것이다.

리 장군은 연방 해체와 노예제도를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고향 버지니아가 남부연합에 가입하기로 결정하자 자신의 고향에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남부연합에 가담해 연방정부에 대항하는 길을 택했다.

리 장군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아들에게 “나는 연방을 절대적으로 지지하지만 내 친척, 내 자식, 내 가정에 대항하는 편에 설 수 없었다…연방이 해체되고 연방정부가 와해되면 나는 고향에 돌아가 사람들과 비극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리 장군은 남부군의 승리를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지키려 한 것은 노예제도와 백인우월주의 제도가 아니라 단지 그가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이었다.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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