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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죽음의 땅’으로 변한 中 핵 실험장(상)

기사승인 2017.09.08  16: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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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위성지도로 본 신장(新疆) 바인궈렁 몽골 자치구(巴音郭楞蒙古自治州)의 마란(馬蘭) 군사지. 이곳은 중국의 중요한 핵실험 기지다. (구글 지도 캡처)

최근 중국 매체 북경일보(北京日報)가 <마란(馬蘭)의 천둥소리, 중국 핵실험 기지를 파헤치다(馬蘭驚雷──揭祕中國核試驗基地)>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로 인해 신장에서 ‘죽음의 바다’라고 불리는 뤄부포(羅布泊)에 위치한 마란 핵실험 기지가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이 기사에 따르면 기지는 처음에 둔황(敦煌) 서북쪽에 건설될 예정이었으나 전 군사 참모장이자 당시 핵실험 무기 실험기지 주임의 반대로 인해 뤄부포로 바뀌었다. 만약 마린 핵실험이 예정대로 둔황에 건설되었다면 과연 중국의 문화유산인 막고굴(莫高窟)이 무사했을지 의문이다.

중국 정부는 1959년 6월 13일 뤄부포에 핵실험 기지를 설립하고 1964년 첫 핵실험에 성공했다. 1996년 마지막 핵실험 역시 이곳에서 이뤄졌다. 32년간 마란 기지의 핵실험에 참여한 군인과 기술자들은 약 1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는 32년간 중국이 몇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는지, 이로 인한 환경오염은 얼마나 심각하며 10만여 명의 인체에 어떠한 위협을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중국 국민들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실상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영원한 죽음의 땅’으로 변한 뤄부포

연구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32년간 비밀리에 약 45차례의 핵실험을 진행했고 이는 TNT 당량(當量:환산한 질량) 2천만 톤에 달한다. 원자폭탄으로 인해 뤄부포는 만신창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험에 참여한 군인과 주변 주민들까지 방사선 피폭과 환경오염으로 고통 받았다.

2009년, 일본 삿포로 의료과학 대학 다카다준(高田純) 교수는 중국 핵실험이 초래한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45차례 핵실험의 폭발위력, 방사선 양, 기상 데이터, 인구 밀도에 근거해 피해 인구 데이터를 산출했다. 이 교수가 발표한 <중국 공산당이 실크로드에 방치한 핵 모험 공포(中國共產黨放置在絲綢之路的核冒險恐怖)>라는 연구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45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다. 그러나 핵 방호 조치가 미흡했던 탓에 그 피해 규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폭된 히로시마와 비교해 4배를 뛰어넘는 수치였다. 인근 주민 약 19만 명이 급성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내부 문서에 따르면 129만 명이 피폭되었고 그중 75만 명이 사망했다.”

일본의 중앙아시아 역사전문가 카네코 타미오(金子民雄)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뤄부포까지 가서 심야조사를 벌였다. “현장에서 작업할 때 눈물이 계속 나오고, 눈물에 피가 섞여 있었다. 목은 따끔하고 계속해서 코피가 나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몇 년이 지난 뒤에도 그는 방사능 노출로 인한 후유증으로 고통 받았다.

해외학자 정이(鄭義)에 따르면 ‘황양거우(黃羊溝)’라고 불리는 신장 핵실험 기지의 중심은 인구 밀집 지역인 쿠얼러시(庫爾勒市)와 옌치현(焉耆縣), 인구 백만 명의 수원지이자 신장 최대 담호수와 겨우 270km 떨어져 있었다. 핵실험 기지의 후방도시인 마린(馬蘭)시와는 겨우 180km, 신장 생산건설병단(新疆生產建設兵團) 농2사(農二師) 36단과는 겨우 127km 거리였다. 신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재미 학자인 그는 회고록에서 신장의 핵실험 기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곳의 방사능 오염은 이미 눈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실험기지와 가까운 나무는 모두 잎이 떨어졌고, 온몸에 물고기 비늘이 돋친 듯한 피부병 환자와 탈모와 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핵실험이 진행될 때마다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일본에서 핵실험 시 발생한 가루가 상공으로 날아온다며 항의서를 보내왔다. 그러나 기지 주변의 한족, 소수민족을 포함한 중국인들은 오히려 묵묵히 핵오염에서 비롯되는 가혹한 결과를 감당했다. 방사능 오염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무는 잎이 다 떨어지고, 보리는 수염이 없으며 제대로 자라지 못해 땅에 닿을 정도였다. 그곳에는 해충도 떠나 자취를 감췄다. 곤충과 동물들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지만, 사람은 그런 선택권조차 없었다. 군사 제도와 호적 등록제로 인해 만 명에 달하는 36사단 군인들, 민간인과 어린이는 죽음의 땅에 발이 묶였다.”

중국 정부는 핵실험 시 자치 정부와 주민에게 이를 통지하지 않았다. 예외적인 경우는 딱 한 번 있었다. 바로 수소폭탄 실험을 처음 진행했을 때였다. 당국은 수소폭탄의 위력이 원자폭탄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현지 정부에 알렸다. 하루 동안 임시 휴일을 지정해 해당 지역의 노동자와 주민들의 외부출입을 금했다. 또한, 창문에 ‘米’자형의 테이프를 붙이고 실외의 모든 음식은 마대로 덮도록 조치했다. 실험 하루 전날에서야 안내를 받은 주민들은 대피할 새도 없이 집안에 숨어 뜨거운 폭풍과 섬광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다카다 준 교수에 따르면, 실크로드 관광지와 핵실험 장소는 같은 곳에 위치한다. 즉 실크로드 관광지를 여행하는 동안 방사능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1996년 이전에는 그 위험이 가장 컸다. 지금도 방사능의 위험은 남아 있다. 당국은 1979년에 남겨놓은 200만 당량의 미폭팔 원자폭탄을 그곳에 방치해 두고 있다. ‘영구적 오염지역(永久性沾染區)’이라는 팻말이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다.

환경오염의 실태조차 이러한데 인체가 어떻게 핵오염에서 안전할 수 있겠는가? 지금 신장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방사능 오염으로 고통 받고 있는지 모른다.<하편에 계속>

 

양닝(楊寧) 기자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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