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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죽음의 땅’으로 변한 中 핵 실험장(하)

기사승인 2017.09.10  08: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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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핵실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고통”

'죽음의 땅'으로 불리는 신장자치구 뤄부포(羅布泊). (사진=NASA)

현재 호주 멜버른에 거주 중인 류칭(劉清, 가명) 씨는 과거 중국의 핵실험 기지에서 근무했다. 류칭은 과거 자신이 겪은 경험을 본지에 폭로해 핵실험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군인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 증언했다.

류칭은 중국에서 핵무기 실험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8023부대에서 10년간 복무한 경험을 이렇게 얘기했다. “최소 십여만 명에 달하는 8023부대의 퇴역 군인들이 크든 적든 방사선에 노출됐다. 공중 폭발 실험이 끝나면, 총참모부 인사가 표본 추출에 참여한 군인의 피폭 데이터를 모두 수집했다. 이 데이터가 국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당국은 핵실험의 피해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 피해 정도는 여전히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핵실험에 참여한 인원에 대해 수십 년간 방치했으며 건강 실태에 대한 추적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사람을 물건처럼 쓰고 생명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수만 명의 전우들이 30년간 끊임없이 ‘상방(上訪ㆍ하급기관 민원처리에 불복해 상급기관에 직접 민원을 내는 행위)’한 끝에, 정부는 2003년에서야 핵실험에 참여한 퇴역 군인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진행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관료들은 집행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검진을 못 받은 전우도 있으며 심지어 검진을 받기 전 사망한 전우도 있다.”

당시 부대에 근무했던 군인들은 핵실험장의 공기, 물, 흙먼지와 직접 접촉했다고 한다. 심지어 류칭은 핵실험에 5차례나 참여했고 그곳에서 약 반년 간 생활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유일한 방호 용품은 일반 군복뿐이었다. 공중폭발 실험을 끝마치고 실험장을 빠져나올 때조차 그의 방사선 수치를 측정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국 정부의 핵실험은 그야말로 비인간적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전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폭발이 일어난 지 3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3만 명에 달하는 부대에는 기갑병, 기마병 등이 속해 있었는데 방금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생체 실험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고위급 관계자는 현장에 참석하지 않았고, 기껏해야 폭발 전 한 바퀴 돌아본 뒤 바로 떠났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 군인은 작전에 한 번 투입되면 수십 일 간 머물러야 했다.”

방사선에 노출된 류칭과 동료들의 건강 상태는 이후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수십 년간 류칭은 주사와 약물에 의지했다. 치아가 빠지고, 만성위염, B형 간염, 비염, 백혈구 수치 감소 등 여러 증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또 그는 지금까지 심각한 불면증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함께 입대했던 동료 열 명 중 2명은 이미 45세의 이른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핵실험에 참여했던 핵전문가 덩자센(鄧稼先)이 암으로 사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피폭 후유증은 류칭의 후대까지 이어졌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 아들은 창창한 20대 초반이지만 감기를 달고 살고 면역력이 굉장히 약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생존해 있는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장애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이며, 피폭으로 인한 피해조차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권리 보호에 대해 중국 정부가 취한 입장은 외면과 억압뿐이었다.
 

中정부, 파키스탄에 핵 실험장 제공

중국 정부는 환경오염, 피폭 피해자 등 여러 문제를 핵실험으로 초래한 데 이어 파키스탄에 핵실험장을 제공하기까지 했다. 류칭은 “이 사건은 기밀로, 문헌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사단급까지만 이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1986년 9월 중국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에 핵실험장을 제공했다. 파키스탄 핵전문가가 인민해방군 군복을 입고 핵실험장을 찾았다. 우리 기지에서는 위구르족을 단 한 번도 모집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당시 나는 사령부에서 행정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사령부에서도 외국인이 왜 중국에서 핵실험을 하는지 의아해 했다.”

“80년대 초, 중국은 민간 지질탐사를 한다는 핑계로 서독에서 대형 시추기를 수입해왔다. 하지만 이 대형 시추기는 지하 핵실험장 건설에 동원됐다. 서독 기술자가 현장 설비검진을 왔을 때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를 속이는 데 성공했다. 핵실험장 건설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기술자가 방문 했을 당시, 상부로부터 외출을 자제하고 외출 시에는 반드시 사복을 착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핵실험 중지 발표 후에도 실험 지속

핵실험 중지 발표 직전인 1996년 7월 29일, 중국 정부는 TNT 1000~5000t에 달하는 45번째 핵실험을 강행했다. 끝난 후 정부는 오늘부로 핵실험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 했다. 9월 24일 중국 첸치천(錢其琛) 외무장관은 뉴욕 UN 본부에서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60여개 국가와 ‘핵실험 전면 금지 조약(Comprehensive Test Ban Treaty)’을 체결 했다.

그러나 류칭은 이와 상반된 내용을 증언했다. “1996년 이후에도 중국 정부는 여전히 핵실험을 진행했으며 전혀 중단하지 않았다. 소규모의 지하 핵실험을 계속 진행해 외부에서는 검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은 옛 전우와 현재도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우가 재작년에 직접 알려준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정보이다. 문건으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양닝(楊寧) 기자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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