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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철길마을’의 속살

기사승인 2017.10.01  14: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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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뜬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이 종종 사색의 여정이 되기도 한다. 늦여름에 떠나는 이번 군산 철길마을 나들이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털에 떠다니는 ’시간여행‘이니 ’애환‘이니 하는 말들이 범상치 않은 데다 물증(사진)도 있어서다. 동시에, 돈 들이고 시간 빼서 가는 여행 선입견으로 반감시키는 건 ’나만 손해‘라는 기특한 생각도 들었다. 결론은 ’보는 이의 앵글에 따라 사물은 달리 보인다‘에 방점을 치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마을 어귀까지는 길찾기 앱이 안내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곧 철거될 운명에 놓인, 그래서 휑뎅그렁하니 비어져 가는 재개발 지역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철로 폭이 조금만 더 좁았더라면 촬영용 레일이 깔린 영화 세트장으로 착각했으리라.

알려진 것처럼, 이 마을은 1944년 일제 강점기 때 신문용지를 나르기 위해 개설한 철도를 따라 형성됐다. 열차는 멈춰선 지 오래고 철길과 마을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철길과 집들 사이가 채 1미터도 안 되게 붙어있어 실제 열차가 달렸다는 게 영 믿기질 않는다.

이곳은 이제 빈집이 많다. 일부는 리모델링하여 가게로 꾸몄다. 여기선 추억을 판다. 테마도 콘셉트도 죄다 추억이다.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옛날 먹거리를 파는 곳도 있고, 7080년대 교복을 빌려주는 가게도 있다. 추억엔 추억으로 맞받는 게 좋다. 이것저것 체험도 하고 사진으로 남겨야 제격이다.

포토 존은 따로 없다. 철길 선로 위도, 허름한 가게 앞도 모두 촬영 포인트가 된다. 군데군데 그려 놓은 벽화들도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능란하지 않은 붓질로 제법 성할 때의 마을 모습을 살려낸 벽화가 특히 인기가 높은 듯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추억여행이다. 넉넉잡아 10분이면 ‘나이 딱지’를 떼고 7080년대 여고생으로 변신할 수 있다. 검정색 스커트에, 폭넓은 카라가 달린 재킷이 세팅되는 순간 누구나 마법에 걸린다. 친구들과 ‘추억에 빠져보는’ 추억을 만들고, 그것을 예쁜 사진으로 담아 두고두고 되새김질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리라.

1km 남짓하다는 철길마을 전(全) 코스를 일람하고 끝자락에 이르렀다. 줄잡아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여행을 대충 마감하고 골목을 빠져 나가려는데 맨 끝집 벽에 쓰인 낯익은 시구(詩句)가 눈에 들어왔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곳 군산이 고향인 고은 선생의 ‘그 꽃’이란 시다. 단 15자로, 4·4조 4음보로, 단 한 문장으로 완성한 시다. 짧아서도 유명하지만, 수많은 언어를 짓눌러 한 쾌로 엮어버린, 절제와 압축미가 빼어난 시다.

노시인의 참견에 계면쩍이 웃음 지며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 어른 말마따나 ‘내려가면서’ 다시 보기로 했다. ‘보상’은 몇 걸음 떼지 않아 곧바로 돌아왔다.

큰 나무 아래 응달진 곳에 쌓아놓은 연탄재가 눈에 띄었다. 그냥 스쳐 지나갈까 하다가 들여다보니 연탄재 위에, 또 그 주변에 쪼그만 꽃잎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태고의 잿빛도, 원색의 노랑도 이제 흙빛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제 몸을 태웠을 그 열정도, 향기를 뿜기 위해 제 몸 쥐어짰을 그 치열함도 이제 식을 대로 식어 철길마을의 빛바랜 추억 속에 귀속되고 있었다.

노시인의 보상은 이어졌다. 무성한 해바라기가 군락을 이룬 벽화 앞에 다시 섰다. 이제 보니 벽화 속 해바라기들이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서 있고, 그 앞 화단에 해를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는 듯한 해바라기들이 고개 숙인 채 시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미국 블랙 힐스에 조각된, 인디언의 영웅 ‘크레이지 호스’의 기념비 앞에 그의 후손들이 모여서 눈을 감고 옛 영광을 떠올리는 모습이 겹쳐졌다.

내밀한 사연들을 엿본 이상 가만있기도 뭣하고, 또 노시인에게 신세도 졌고 해서 피드백을 준비했다. 언어가 짧아 아는 단어들을 죄 모아 잇대고 제목은 ‘꽃의 침묵’으로 정했다.

여기
해 비낀 응달에 떨어진 꽃도
꽃은 꽃이고

저기
햇살 머리에 이고 시드는 꽃도
꽃은 꽃일세


눈맞춤이 서툴러 보지 못한 꽃도
꽃은 꽃이고


몸낮춤이 인색해 뵈지 않는 꽃도
꽃은 꽃이듯

철길마을을 한마디로 형용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매우 특이하다는 점이다. 철길이 녹슬자 모든 것이 ‘과거’가 됐다. 현재형은 침묵하고 과거형이 득세했다. 평범한 삶이 애환이 되고 사소한 것이 추억거리가 됐다. 낡은 ‘과거’를 입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죽어야 사는’ 혹은 ‘죽어서 사는’ 이 형용모순, 이 패러독스가 철길마을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군산 철길마을은 그렇게 멈춘 듯 살아있다. 고물고물 느리게 가는 시간이 과거와 현재를 넘다들며 새록새록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현재형이다.

잠시 물 한잔 마시며 쉬는 동안 동행한 친구(인동張씨)에게 감상을 물었다. “이곳 군산은 일제가 식량이나 사금 등을 수탈해 가는 전초기지였다”로 시작된 ‘인동張’의 이야기는 “왠지 일제 상흔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애잔하고 ··· 하여튼 편치 않다”는 데까지 이어졌다. 서둘러 말을 끊고 수탈의 현장인 적산가옥을 둘러보자며 철길마을을 나섰다.

#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거기에 누군가의 관심과 공감이 더해지면 그 가치는 무한히 커질 수 있다. 어느 시인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한옥 기와집의 추녀 끝은 살짝 올라갔고, 여인의 옷고름은 나부끼는 바람을 기다린다”고. 군산 철길마을은 그 나름의 속살이 애틋하고, 풀죽어 있어도 할 말 많은 우리네 역사다. 모르면 모를까, 알면 들리는 우리의 이야기다.

 

글. 사진 홍성혁 본지 고문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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