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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성시(門前成市)와 문전작라(門前雀羅)

기사승인 2017.10.10  1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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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ock)

 ‘문전성시(門前成市)’란 ‘집 문 앞이 시장을 이룬다’라는 뜻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역사서인 <한서(漢書)>의 ‘정숭전(鄭崇傳)’에서 유래한 말이다.

전한(前漢)의 13대 황제인 애제(哀帝)는 어린 나이에 황제에 즉위하였다. 그러자 외척들이 정치를 쥐락펴락하고 애제는 향락에 빠져 정치를 등한시했다. 이때 정숭(鄭崇)이라는 충직한 신하가 황제에게 외척의 부패와 횡포에 대하여 직언을 했다. 애제는 처음에는 정숭의 말을 귀담아듣는 듯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그를 귀찮게 여기고 점점 멀리했다.

그 무렵 황제에게 아첨만을 일삼던 간신배 조창(趙昌)이라는 자가 황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 정숭의 집에는 찾아드는 사람들이 많아 집 문 앞이 장을 이룰 정도라고 합니다. 이는 심상치 않은 일이오니 엄중히 문초하시옵소서.”

애제는 즉시 정숭을 불러 물었다. “그대 집 문 앞은 시장과 같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정숭이 이에 답하기를 “신의 집 문 앞은 시장과 같으나, 신의 마음은 물같이 깨끗합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애제는 정숭의 말을 믿지 않고 그를 감옥에 가두게 했다. 그 후 정숭은 옥사하고 말았다. ‘문전성시’는 간신배 조창이 한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억울한 사연이 담긴 말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문전성시’의 반의어로 ‘문전작라(門前雀羅)’라는 말이 있다. ‘문 앞에 참새 그물을 친다’라는 뜻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음을 의미한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높은 벼슬에 올랐던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는 겸손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그들의 집 문 앞은 항상 방문하는 손님들로 붐볐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벼슬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는 집안조차 가난하였으므로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들어 결국에는 아무도 방문하지 않게 됐다.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史記)>의 ‘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그들의 전기를 기록한 후 끝에 적공(翟公)의 사례를 덧붙이며 이렇게 말했다.

급암과 정당시 같은 현인(賢人)이라도 세력이 있을 때는 손님이 많았지만, 힘이 없어지자 모두 떠나 버렸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은 어쩌겠는가. 또 적공(翟公)의 경우도 그가 정위(廷尉)의 벼슬에 있을 때는 방문객이 넘쳐 났지만, 그가 벼슬을 떠나자 방문객은 끊어져 ‘문 앞에는 참새 떼가 모여들어 새를 잡는 그물을 문 앞에 칠 수 있을 정도(門前雀羅 - 문전작라)’였다.

돈과 권력이 있을 때는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그것이 사라지면 ‘문전작라’하게 되는 세상. 이러한 세상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한 우리 속담이 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지만, 정승이 죽으면 가지 않는다.’

 

강병용 기자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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