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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할머니'는 어떻게 예언자가 됐을까?

기사승인 2018.01.25  0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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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미친 여성, 미친 도사, 심지어 미친 거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미래를 예언할 뿐만 아니라 많은 일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00년대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남부의 한 마을에 펑이라는 할머니가 살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녀를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미쳐 지난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몸에 기운이 넘쳤으며 막대기를 들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어느 해 여름, 한 집에서 닭 두 마리를 잃었다. 때때로 노래를 불렀는데 사람들은 처음에는 노래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나 점차 그 노래가사가 예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닭을 훔친 것은 쿵 형제의 장난꾸러기 강아지들이었다. 사람이 훔친 게 아니라 개가 훔친 것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닭주인은 쿵 형제를 의심했지만 서로 이웃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을 때, 쿵 형제는 닭을 가지고 다른 도시로 갔다. 펑 할머니는 쿵 형제 주위에서 울면서 "다른 집의 닭은 집에 가야 한다"라고 노래했다.

사람들은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야 그 노래가 무엇을 말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날 저녁, 닭고기를 먹은 큰 아이가 목구멍에서 닭 뼈가 걸렸다. 감자랑 같이 삼키려고 했지만, 숨이 막혀 죽었다. 펑의 예언처럼 ‘다른 집 닭’을 먹고 저승의 ‘집으로 가야만’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미친 펑의 노래를 기억하고 그 내용을 토론했다.

또 어떤 날은 하 씨의 집에 물이 새서 수리해야 했다. 하지만 펑 할머니는 "누수가 아니라 항아리 바닥"이라고 노래를 불렀다.

하 씨는 펑 할머니의 노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며칠 뒤, 하 씨는 아들이 쌀을 퍼가는 것을 알았다. 아들이 도박으로 돈을 잃어버리자 빚을 갚으려 몰래 쌀을 가져가 쌀독이 비어버린 것이었다.

마을 노인들은 이런 일을 회상하며 많은 얘기를 했다. 펑은 몇 년 동안 방랑했고, 종종 의미 있는 가사를 노래했다. 펑이 말한 단어 대부분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 인생의 삶, 사악한 기운, 선한 사람, 좋은 소식 등이었다고 한다. 미친 펑 할머니의 가사가 공식 예언으로 간주하지는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의 노래에서 앞으로 마을에 일어날 크고 작은 예언이었음을 알았다.

펑 할머니와 같은 사례는 보기가 드물다. 실제로 그들은 예언자이지만 반드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기공계(氣功界)에는 잘 알려져 있다. 부처는 '업력윤보(業力輪報)'를 말씀하셨다. 인간이 이생에서 지은 행위의 결과는 다음 생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힘든 삶, 고통, 불운 등은 전생에 지은 좋지 않은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라 설명한다. 행복한 삶 역시 전생에 쌓은 선업의 결과이다.

사실 펑 할머니의 고생은 업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일반적으로 노인은 남은 삶이 짧기 때문에 고생으로 업을 없애버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초를 가진 소수의 사람에 한해 펑 할머니처럼 미치게 하여 고생을 크게 겪어 업을 많이 갚게 했다.펑 할머니는 아마 전생에 타인에게 많이 베풀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미친 도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보기 드문데, 그것은 천상의 존재 영역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여름에는 씻지 않아 냄새가 나고 겨울에는 얇은 옷을 입으며 동물 배설물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 목적은 업을 빨리 갚아버리기 위해서다. 이렇게 몇년간 업을 빨리 없애버리고 나면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 지혜가 열리고 인간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물론 아무에게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전생에 지은 덕과 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생을 겪기 싫어한다. 하지만, 미친 도사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업력윤보의 이치를 안다면 고생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며, 자신에게 닥친 고생을 무작정 배척할 게 아니라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임을 알 것이다. 비록 우리가 ‘미친 도사’는 아니지만 그것이 업을 갚는 길이기 때문이다.

김현진 기자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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