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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체제' 추진하는 시진핑, 노림수는 무엇?

기사승인 2018.03.08  10: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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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시진핑 주석이 헌법 개정을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Lintao Zhang/Getty Images)

중국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의 제1차 전체회의가 지난 5일 개막한 가운데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연임 제한 조항을 폐지하는 헌법 개정안 초안이 발표됐다. 전인대 대변인은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 폐지가 시진핑을 핵심으로 한 당 중앙의 권위와 지도력의 통일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헌법 개정안 초안 작성 과정도 자세히 소개됐다. 지난해 당대회 개최 직전인 9월 29일, 시진핑 주석이 참석한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결정하고 진행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개헌안이 통과되면 이는 1982년에 제정한 현행 헌법인 ‘82헌법’의 제5차 수정안이 된다.

중국 국가 주석은 상징적 원수

중국 정부는 1954년 9월 20일 제1기 전인대 제1차 회의에서 최초의 헌법을 공포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 국가주석의 임기는 ‘4년’으로 명시돼 있는데, 연임 제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 회의에서는 공산당 정권의 첫 국가 주석도 선출됐는데, 그는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이었다.

1959년까지 마오쩌둥은 당 주석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겸 국가주석 등 3개의 직책을 맡으며 최고 권력으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그해 4월 당내 2인자인 류사오치(劉少奇)가 국가주석에 올랐고 1968년 사망하기까지 약 9년간 재임했다. 이 기간 동안 둘의 권력투쟁이 계속됐고 결국 류사오치의 패배로 끝나게 됐다. 류사오치는 문화대혁명의 발발과 함께 1966년부터 구금되어 폭행과 고문 끝에 68년 사망했다. 이후 국가주석직은 오랫동안 궐위된 채 남게 됐다.

1970년 마오쩌둥은 국가주석ㆍ부주석직을 폐지하려 했으나 당내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그러나 75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ㆍ부주석직을 공식적으로 폐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1982년, 당 최고 실력자가 된 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한 개헌에서 국가주석ㆍ부주석직이 부활됐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집권기에 벌어진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국가주석에 대해 연임 제한을 두고 실권이 없는 상징적 원수로 격하시켰다. 이에 따라 국가주석도, 당 총서기도 아니었던 덩샤오핑이었지만 사망에 이를 때까지 정치권 배후에서 최고 지도자나 다름없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스타오(石濤) 시사평론가는 마오쩌둥의 국가주석ㆍ부주석직 폐지나 덩샤오핑의 연임 제한 모두 "자신의 독재 통치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연임 제한을 삭제하는 이번 개헌안이 통과되면 1954년 당시의 헌법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밝혔다.

‘구룡치수(九龍治水)’라는 집단지도체제

리린이(李林一) 시사평론가는 2012년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 시진핑이 덩샤오핑이 확립한 3가지 불문율을 차례로 혁파했다고 파악했다. ‘후계자 격대지정’,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 폐지, 집단지도체제 폐기 등이다.

집단지도체제는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의 개인숭배 강요와 독재 정치로부터 교훈을 얻은 덩샤오핑이 도입한 것으로, 최고 지도부로 통칭되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7명 혹은 9명)이 중요 정책을 다수결로 결정하는 체제를 말한다.

각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맡은 분야를 주관하며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예를 들어 당 서기가 국가주석,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임하여 정부와 군을 장악한다. 다른 상무위원은 국무원 총리, 전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임명돼 활동한다. 이러한 분업 협력 시스템을 ‘구룡치수(九龍治水)’로 일컬어 왔다.

‘구룡치수’는 권력의 지나친 집중을 피할 수 있는 한편 최고 지도자의 지시가 상무위원이 각각 맡은 분야에서 확실하게 집행되지 않는 단점을 노출해왔다. 게다가 상무위원 여럿이 같은 파벌에 속해 있는 경우 세력을 키워 당 서기의 지위를 위협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2002년 전당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涛)가 당 총서기에 취임했다. 그러나 전임자인 장쩌민이 사실상 국정을 장악하고 있어 주도권을 놓아주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1기 정권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수를 7명에서 9명으로 늘렸는데 이는 순전히 장쩌민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따라서 상무위원 9명 중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장쩌민파 일원으로 채워졌다. 최고 지도부가 장쩌민의 뜻대로 조종당하면서 후진타오ㆍ원자바오 정권 내내 10년 이상 ‘정령불출 중난하이(政令不出中南海)’, 즉 정책이 지도부가 있는 중난하이 밖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다.

장쩌민은 2004년까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재임하며 군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는 정계에서 은퇴하고 군과 행정 전권을 시진핑에게 이양했다. 이때 당대회에서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수가 다시 9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이들 7명은 시 주석을 필두로 한 리커창(李克強), 왕치산(王岐山) 시진핑 진영, 장더장(張徳江), 류윈산(劉雲山), 장가오리(張高麗)로 이루어진 장쩌민파, 파벌색이 옅은 위정성(兪正声)으로 구성됐다.

재미 중국 경제전문가인 허칭롄(何清漣)은 2월 26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시진핑은 집권 1기 때부터 반부패 운동과 군 개혁 등을 통해 권력 집중을 도모해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시 주석이 1인체제를 고집하는 이유가 ‘구룡치수’의 분업 체제를 계속할 경우 후진타오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2017년 가을 열린 19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대부분 시진핑의 측근들로 구성됐다.

지난해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는 유임, 68세는 은퇴)'에 걸려 최고 지도부에서 물러난 왕치산이 이번 전인대를 통해 국가 부주석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시진핑의 오른팔이자 ‘8번째 상무위원’으로 불렸던 왕치산의 정계 복귀는 ‘시왕체제(習王体制)’가 향후 계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중국 정치를 주름잡던 집단지도체제가 약화되면서 불가피하게 시진핑을 향한 권력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 주석은 더욱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정권 운영의 향방이 어떻게 흐를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강민 기자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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