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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 전야 중국' 무술년 헌법 개정(1/2)

기사승인 2018.03.20  10: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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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언론은 중국 공산당 고위층의 헌법 개정안이 정식 공표되기 전까지 대다수의 부부(副部)급 간부들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사진은 스모그 가득한 베이징(北京)의 톈안먼(天安門).

2018년은 60년 만에 돌아온 ‘무술년(戊戌年)’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무술년마다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대사건이 발생했다. ‘무술변법(戊戌變法)’을 비롯해 중국 공산당에 의해 3년 간 이어진 대기근 사태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2018년 무술년에도 역사에 남을 사건이 벌어졌다. 시진핑(習近平) 당국이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을 폐지하는 헌법 개정안을 발표해 대내외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무술년 중국 공산당 당국의 헌법 개정

지난달 25일, 중국 정부는 당 중앙위원회가 건의한 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특히 여기에는 ‘국가주석, 부주석 임기는 2회를 초과할 수 없다’는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시진핑 주석이 2023년 이후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공산당은 1954년에 처음으로 헌법을 제정한 이후, 1957년‧1978년‧1982년 등 세 차례 개헌을 한 바 있다. 사실 매번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 새로 헌법을 제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중 1982년 제정된 헌법에는 지도자 연임 제한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국가주석과 부주석, 국무원 총리, 부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위원장과 부위원장, 최고법원장, 최고검찰원장의 연임 회수를 2회로 제한한 것이다.

60년에 한 번 돌아오는 다사다난 무술년

중국 전통 역법에 따라 무술년은 60년에 한 번 돌아오는데, 중국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한 해로 기록돼 있다. 지난 세 차례의 무술년을 돌아보면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났고 모두 중국 근대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1958년은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 첫 번째 무술년이었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은 ‘초영간미(超英趕美: 영국을 앞지르고 미국을 뛰어 넘는다)’를 위해 ‘대약진’ 운동을 벌였고, 결국 3년간의 대기근 사태를 초래했다. 역사학자이자 전(前) 신화사(新華社) 기자였던 양지셩(楊繼繩)은 최소 3600만 명의 중국인이 굶어죽었다고 말했다.

1898년에는 그 유명한 무술변법이 일어났다. 무술변법은 광서제(光緒帝)의 지휘 하에 단행된 변법이 서태후(慈禧太後)로 인해 실패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청 왕조는 갑오전쟁(甲午戰爭)의 패배로 일본에 타이완(台灣)을 할양했다.

1838년에는 도광제(道光帝)가 청나라 도광년(道光年) 마지막 날 임칙서(林則徐)를 흠차대신으로 임명하고 광둥(廣東)으로 보내 아편을 금지시켰다. 임칙서는 후먼(虎門)에서 아편을 불태웠고, 이는 2년 후 영국과의 아편전쟁으로 번졌다. 그리고 아편전쟁의 결과, 청나라 정부는 5개 항구 개방 및 홍콩 할양을 담은 <난징조약(南京條約)>을 체결했다.

갑작스러운 헌법 개정, 치열한 내부 권력 투쟁

중국 정부의 개헌과 관련해 뉴욕타임스 중국어판은 더글라스 팔(Douglas H Paal)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부원장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이 올해 3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기 전 갑작스럽게 개헌 카드를 꺼낸 것은 공산당 내부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글라스 팔 부원장은 “개헌은 정상적인 일이 아닌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언가 벌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라면서 “시진핑이 이겼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분명한 건 현재 평시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여러 언론은 중국 공산당이 20차 당대회에 가서야 개헌을 성사시킬 것으로 예측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달 28일 기사 <시진핑, 임기 제한을 삭제하고 권력을 확장하다>에서 ‘중국 공산당 고위관계자급 정보통’의 말을 인용해 ‘국가주석 임기 제한 폐지와 관련한 헌법 개정안은 이중전회에서 논의된 바 있으나 보류 의견으로 인해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이 개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강경 수단을 동원했으며, 이러한 방식이 ‘자유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불만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국가주석의 임기제한 폐지는 중국 공산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로 이루어진 지도 체제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평론했다.

하지만 홍콩 빈과일보(蘋果日報)는 주요 언론들의 보도를 정리한 결과, 시진핑이 태자당의 정권탈취 시도를 경험하면서 장기 집권을 원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또 시진핑은 대내적으로 저우융캉(周永康) 전(前) 정치국 상무위원과 보시라이(薄熙來) 전(前) 충칭(重慶)시 서기의 정권탈취 정변을 경험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19차 당대회 기간에는 정부가 보시라이, 저우융캉 등 6명이 ‘정권탈취’를 시도했다고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고, 이 사건을 ‘소름끼치게 놀랍다’고 표현했다.

보시라이는 태자당 출신이고, 저우융캉 등은 장쩌민(江澤民)파 고위층에 속해 있다. 이 때문에 왕리쥔(王立軍) 사건도 장쩌민 일파가 일부 태자당 일원과 손잡고 정권탈취를 시도한 것으로 본다.

태자당과 장쩌민파의 결탁, 개헌 전 처리된 우샤오후

당국이 개헌을 공표하기 전인 2월 23일, 안방보험의 우샤오후이(吳小暉) 회장이 자금모집 사기, 직무상 침해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안방(安邦)그룹 역시 1년 간 보험감독회의 감독‧관리를 받게 됐다.

리린이(李林一) 시사평론가는 우샤오후이가 장쩌민파 고위층과 결탁하고 보시라이 및 저우융캉 등과 손을 잡은 것은 태자당과 장쩌민 일파가 연합하여 시진핑으로부터 권력을 탈취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보시라이는 정치적 쿠데타에, 우샤오후이는 경제적 쿠데타에 가깝다는 것이 다르다.

우샤오후이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손녀사위로 천샤오루(陳小魯), 주윈라이(朱雲來) 등 태자당과 가깝게 지내며 그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재산 축적 과정에서 장쩌민파의 고위층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팡샤요(方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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