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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왜 랴오닝호에 오르지 않았나?

기사승인 2018.04.18  11: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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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호 (사진=Getty Images)

지난 12일 남중국해 해상에서 중국해군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 실시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제18차 보아오포럼 개막식에 참석한 직후 남중국해 해상 열병식으로 이동해 연설을 진행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3일 간 진행될 예정이던 군사훈련이 하루 앞당겨 종료됐다는 점이다.

중국 국방부는 이번 열병식에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7명이 대동했다고 밝혔다. 열병식 당일에는 48척의 전함과 76대의 군용기, 그리고 해군 장병 1만여 명이 동원됐다. 시 주석은 중국의 유일한 항공모함인 랴오닝호에서 시행된 함재기 이륙 훈련을 참관한 후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 직후 중공의 대규모 군사훈련은 예정보다 앞당겨 종료됐다.

3일로 예정됐던 군사훈련을 서둘러 마무리한 배경은 무엇일까?

중국 해군은 일찍이 포럼 기간에 남중국해 일부 해역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하겠다고 했고 중공은 선박 항행 금지 구역에 입항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공의 군사훈련이 시작된 직후인 4월 11일 미국의 루스벨트호 핵추진 항공모함 전대(戰隊)도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미국·중국·일본과 일부 동남아 국가의 해군 역시 남중국해에서 훈련했다.

로이터 통신은 미군이 필리핀 당국자와 군부 장성들을 군사훈련 현장에 초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훈련에서 미군은 전투기 F-18 20대를 동원했으며, 약 20분 동안 중공이 설정한 항해 금지 구역에서 진행했다.

루스벨트호 항모 전대 지휘관인 스티브 쾰러(Steve Koehler) 해군 소장은 “몇몇 선박들이 루스벨트호 주변에 있는 것을 관측했다. 남중국해에서 훈련 중이던 각국의 해군 중 일부로 추정된다"면서도 "우리가 만난 선박들은 전쟁의 프로를 존중했다"고 말했다.

쾰러 소장의 발언은 미국의 핵추진 항모가 중공이 설정한 항해 금지 구역에 진입해 핵심 지대에까지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는 미군이 중공의 금지령을 완전히 무시한 것으로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던 급박한 상황이었다.

중공이 남중국해에서 위력을 과시한 배경에는 중미 간 경제무역 마찰의 격화가 있었다. 중공은 정권 붕괴를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본격적인 무역전을 개시할 수는 없지만 체면마저 잃을 수는 없기에 남중국해에서 무력을 과시함으로써 대만과 미국을 위협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고 남중국해에서 똑같이 무력을 과시했다.

중공 혁명원로 뤄루이칭(罗瑞卿)의 아들 뤄위(羅宇)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절에 암암리에 만연했던 관직매매가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심각하다고 밝혔다. 뤄위는 “중공군은 부패할 대로 부패해 전투력을 상실했으며, 시진핑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에서 이러한 오합지졸 군대가 전투에 돌입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중공은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미군의 무력 앞에서 중공은 대만해협으로 자리를 옮겨 ‘무력통일’을 위한 맞춤형 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는 공포를 두어 발 쏘는 데 불과했지만 자국에는 군사훈련이 잘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이때 중공의 심리는 아마 '내가 설정한 범위 내에서 활보하다니··· 감히 싸우지는 못하겠고 가만히 있자니 화가 나 억울하기 그지없다'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럴 바에야 명분을 찾아 철수하는 것, 즉 대만해협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낫다고 계산한 것일터.

중공은 시 주석이 연설에서 “위대한 중화민족이 부흥하는 과정에서 강대한 해군이 지금처럼 절박하게 필요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시 주석은 왜 랴오닝호에 오르지 않았을까? 왜 급하게 보고만 갔을까? 이에 대해 한 가지 연관된 과거를 떠올릴 수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2006년 5월 황해에서 베이하이(北海) 함대를 시찰했을 때 일이다. 갑자기 군함 2척이 당시 후 전 주석이 탄 함정을 공격해 왔다. 후 주석은 무사했지만 병사 5명이 사망했다. 이후 이 군함은 장딩파(張定發) 당시 해군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후 전 주석을 살해하려 했다고 전해졌다. 장 사령관은 장쩌민의 심복 중 하나다.

홍콩 시사지 ‘동향(動向)’에 의하면, 후 전 주석은 2009년 4월 23일 칭다오(青岛)에서 14개국의 해상 열병식을 사열하던 도중에 ‘열병식 직후 장쩌민파 요원의 암살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후 전 주석은 계획을 급작스레 변경해 암살을 피했다.

이런 신변 위협은 시 주석에게도 제18차 당대회 이후 최소 10회 있었다. 지난해 12월처럼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는 일이 최소 5차례, 항공기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도 4건이었다. 시 주석이 랴오닝호에 오르지 않고 황급히 떠난 모습에서 아무래도 후 전 주석이 봉착했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리무양(李沐阳) 기자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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