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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스탈린의 죽음: '블랙코미디'로 부담 줄인 어두운 역사

기사승인 2018.06.18  18: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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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도 어찌할 수 없었던 여성 예술가 이야기

모스크바-볼가 운하 기슭에서 보로실로프(맨 왼쪽), 몰로토프, 스탈린 및 예조프(맨 오른쪽). 예조프는 재판을 받고 1940년 처형된 반면, 몰로토프는 1953년 스탈린 사후 권력을 얻기위해 싸웠다.(Wikipedia Commons)

나는 스탈린이 마리아 유디나(Maria Udina)의 음악적 천재성을 높이 평가한 점에 공감한다. 그리고 마리아가 스탈린에 대해 가졌던 깊은 증오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마리아는 소련 정권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큰 위험을 무릅쓰고 스탈린 앞에서도 이를 드러냈다. 스탈린은 그녀를 살려두고 안전을 약속했는데, 그녀의 뛰어난 재능 때문이기도 했고 자신의 권력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리아는 1970년 사망했지만 오늘날까지도 과소평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그녀처럼 러시아적인 엄청난 힘과 열정, 극적인 재능으로 바흐와 모차르트를 연주한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독창성이나 정확성에 신경쓰기보다는, 공연을 통해 드라마를 이끌어 내는 데 관심이 있었다.

스탈린의 죽음

나는 아만도 이아누치(Armando Iannucci) 감독의 새 걸작 '스탈린의 죽음' 첫 부분을 보고 정말 기뻤다.

마리아가 라디오 생방송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중이다. 스탈린은 라디오로 연주를 듣다가 그 음반을 제작해 아파트로 가져오라고 명령하지만 음반은 없었다. 마리아는 거액이 지급되기 전까지 녹음을 거절하겠다고 버틴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얻고 음반이 만들어지자 음반 자켓에 메모를 써 넣는다. 스탈린이 러시아를 망치는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독재자는 그것을 읽고 요절복통하며 웃다가 뇌출혈을 일으킨다.

출처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위의 일화는 사실일 개연성이 있고 이 영화는 그녀의 정신성을 잘 포착하고 있다. 또 흐루시초프, 베리야, 몰로토프, 안드레예프, 주코프 등 이 시기 주요 인물들을 탁월하게 묘사하면서, 스탈린의 죽음에 뒤이은 거친 권력 투쟁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이 영화는 베리야의 처형 그리고 서기장이 되는 흐루시초프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기이한 몇 개월간 실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훌륭한 역사 가이드 역할을 한다.

이 영화는 논픽션이라 해도 좋을 만큼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갖췄다. 예를 들어, 스탈린의 핵심 부하들은 이 거대한 권력을 가진 남자가 곧 죽을 것이라는 말에 기뻐 흥분했다는 게 분명해보인다. 의사를 부르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는데, 위원회를 열어 결정을 내려야 해서라는 것이다. 또 다른 장애도 물론 있었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의 유능한 의사들을 거의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기에, 치료할 의사가 남아있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장례식도 큰 사건으로 묘사되는데, 러시아 전역에서 온 추모객들이 기차에서 내려 도심으로 가려고 나섰다가 곧바로 총격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은 그 후 수 십 년 동안 지속된 탈스탈린화라는 점진적 과정의 시발점이 됐고, 이 과정은 마침내 소비에트 정권의 붕괴, 거대한 제국의 패배로 종결됐다.

코미디일까?

그러나, 정말 주목할 점은 이 영화가 블랙 코미디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스탈린 정권은 최악의 대량 학살을 저질렀고, 그 정권에 몸 담았던 어느 누구도 손에 짙은 피얼룩이 묻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코미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구나 이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공포감을 계속 견뎌내야 하는데, 이 점 때문에 이 영화는 비난받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약 사실적으로 연출했다면 영화관람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코미디화 했기에 그나마 혐오감을 이겨내고 그 기이한 역사를 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살인 정권의 잔혹한 진실을 더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섬뜩한 작품 '수용소 군도'를 읽어볼 수 있을 것이고, 읽어 보아야 한다.

이런 끔찍한 역사를 외면하고 싶은 이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이 영화는 새로운 젊은 세대가 소련 공산주의의 진실에 관심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 공산주의는 유혈의 역사, 독재, 빈곤, 끔찍할 정도로 많은 사람의 고통을 초래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하에 벌어진 역사상 가장 극적인 경험이었기에, 누군가 이런 경험을 겪고서도 사회주의를 믿는다고 한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데, 러시아가 그렇다. 푸틴은 이 영화 상영을 금지했다.

윤리와 제도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사건 묘사를 넘어선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에 대한 묘사이다. 권력 투쟁에서는 옳고 그름의 윤리에 따른 행동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다. 이기는 쪽에 서지 못하면 살해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완전히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약속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옳고 그름은 적을 공격하기 위한 구호에 불과하다. 불법행위는 필연이다. 말은 선전 수단일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자, 영화를 통해 모두가 몰락하는 걸 보았고, 이들이 나쁜 짓을 하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면 질문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 당신이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당신은 어쩌면 영웅적이어서 옳은 일을 위해 순교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역사상 많은 사람이 이런 영웅적인 길을 택했다. 그렇지만 도덕적, 영적으로 가장 엄격한 윤리 전통에서도 이런 영웅주의는 요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윤리는 단지 악을 행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선에서 멈출 뿐, 영웅주의를 명령하진 않는다.

이 이야기는 두려운 진실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옳은 선택도 사전에 차단되는 제도적 조건 하에서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무시무시한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진실은 정권 획득을 위한 투쟁의 경우에 더 잘 나타난다. 승자는 오직 한 명일 수밖에 없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승자를 알아맞춰야 한다. 이러한 ‘승리 아니면 죽음’ 게임은 정권 투쟁에서 특히 익숙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정권이란 거래를 통한 이득이나 부의 증대라는 생각에 기반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크기가 정해진 파이이고, 권력은 제로섬 게임이다.

어두운 마음 부각하는 권력의 속성

오래 살다 보면, 이런 문제와 여기서 야기되는 무자비함이 소련 정부 또는 다른 전체주의 체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권력은 사람 마음에서 최악의 것을 이끌어내고, 옳고 그름에 대한 정상적인 관심을 어둠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현상은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제도적 환경에서 더 잘 나타날 수 있다.

주변을 충분히 둘러보면, 시기 질투가 성공한 사람의 이마에 어떻게 표적을 묻히는지, 지위와 권력에 대한 명백한 위협 앞에서 우정과 충성심이 어떻게 사그라지는지, 물질적 박탈에 직면해 인간이 얼마나 비굴한지, 인간이 고귀한 이상 실현 가능성에 관해 떠드는 말과 달리 얼마나 타인에게 무관심한지 등등. 인생에 대해 아주 어두운 전망이 들지도 모른다. 누구든지 배신과 악의 실행자가 될 수 있고 그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인류 문명이 지속되는 것은 사회의 문화가 진실과 인권, 정의와 공동선을 향한 희망을 존중하는지 여부와 결부돼 있다. 이러한 이상들이 소련 공산주의 아래에서만 파괴됐을까? 기업, 가정 또는 친목 네트워크, 심지어 교회처럼 문명화된 것처럼 보이는 환경에서도 예고 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

마리아 유디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인 탁월함에 집중했다. 그녀는 결코 타협하지 않고 매번 진지한 용기와 끈기로 스탈린과 싸웠다. 그녀는 엄청난 고통을 받았지만 품위를 지켰고 놀라운 예술적 유산을 남겼다. 어떻게든 최악의 시기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성공했다.

마리아의 삶은 최악의 제도도 진실과 고결을 첫 번째 원칙으로 삼고 끈질기게 전념하는 정신은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제프리 터커는 미국 경제연구소 편집국장이다. 그는 <우익 집단 주의:자유에 대한 다른 위협> 포함해 다섯 권 가량의 저서를 냈다. 기사는 AIER.org 처음 게시됐다.

기사에서 표현된 견해는 저자의 의견이며 에포크타임스의 견해와 다를 있습니다.

제프리 터커(Jeffrey A. Tucker)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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