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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9) 신앙편

기사승인 2018.08.20  01: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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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럽 공산당이 무너졌어도 공산당 유령은 소멸되지 않았다

사진=셔터스톡

제6장 신앙편: 악마는 사람이 신을 반대하고 배제하도록 한다


목록

머리말

1. 동방, 폭력으로 신을 반대하고 배격하다
1) 소련이 폭력적으로 정교 말살
2) 중국 공산당의 전통문화 파괴와 종교 말살은 신과 인간의 연결고리를 끊었다
(1) 중국 공산당의 중화 전통문화 파괴
(2) 전통문화의 계승 기반을 훼손하다
(3) 종교 박해

2. 서방, 종교에 침투하고 종교를 타격하다
1) 종교에 침투하다
2) 종교를 타격하다

3. 공산 사령(邪靈)이 조작한 변이된 신학

4. 종교 혼란상

*****

머리말

세상의 거의 모든 민족은 모두 태고의 신화와 전설을 가지고 있는바, 애당초 그 민족의 신이 어떻게 자신의 형상대로 자신의 민족을 만들었는지를 세인들에게 알려주었다. 동시에 인간을 위해 도덕과 문화의 기틀을 잡아주어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천국으로 돌아가는 한 갈래의 길을 남겨주었다. 동방에서는 여와, 서방에서는 여호와가 사람을 만들었다는 기록과 전설이 있다. 신은 인간에게 반드시 신의 계명(戒命)을 지켜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신의 징벌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경고했다. 인류의 도덕이 심하게 부패했을 때, 신은 우주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을 멸망시킨다. 전 세계의 많은 민족에게는 모두 문명을 사라지게 한 대홍수에 관한 전설이 있는데, 어떤 것은 매우 상세하고 확실하다.

인간의 도덕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覺者)와 선지자들은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마음을 다시 바로잡고 인간이 파멸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인간의 문명이 성숙하게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예를 들면 서방의 모세와 예수, 동방의 노자, 인도의 석가모니,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가 모두 그렇게 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불(佛)·도(道)·신(神)인지, 무엇이 신앙과 수련 및 부동(不同)한 법문인지, 무엇이 바른 것이고 무엇이 사악한 것인지, 어떻게 진위를 구별하고 선악과 각자를 구분할 것인지를 알게 해 최후 말겁(末劫) 시기를 기다려 창세주가 다시 세상에 나타날 때 구원받아 천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했다.

사람이 일단 그들 민족을 만든 신과 연계가 끊어지면 도덕은 신속하게 부패한다. 일부 민족은 그렇게 사라졌다. 예를 들면 전설 속의 아틀란티스 문명은 하룻밤 사이에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동방, 특히 중국에서 신앙은 전통문화의 도움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거짓말로 중국인들을 속여 무신론을 받아들이게 하기는 어렵다. 공산 사령(邪靈)은 5천 년의 신앙과 문화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해 대대적으로 폭력을 사용해 전통문화를 계승해온 사회 엘리트를 살육하고, 거듭된 거짓말로 한 세대의 젊은이들을 속였다. 서방과 세계 여타 지역의 종교 신앙은 신과 인간을 연계하는 주요 방식이자 도덕 수준을 유지하는 중요한 초석이다. 공산 사령은 비록 이런 국가에서 공산 폭정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사기와 변이 및 침투 수법으로 여전히 바른 종교를 소멸하고 인간을 타락시키려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했다.

1. 동방, 폭력으로 신을 반대하고 배격하다

1) 소련이 폭력적으로 정교를 말살

《공산당 선언》은 가정과 교회, 국가를 없애야 한다고 떠벌렸다. 따라서 종교를 말살하고 전복하는 것은 공산당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신을 믿었지만, 사탄과 한 무리가 된 마르크스 본인도 신과 악마의 존재를 깊이 알고 있었다. 또한, 적나라한 악마의 교리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고, 특히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무신론을 부르짖으며 ‘종교는 인민의 정신적 아편’이고 ‘공산주의는 직접 무신론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악마를 숭배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사람이 신을 믿지 않으면 악마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침식하고 점유해 결국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산 악당이 ‘애초부터 구세주 따위는 없었고 또 신선이나 황제에게 의지하지도 않았다’고 외치는 이유이다.

마르크스는 이론적으로 종교와 바른 신(正神)을 비난했다. 1917년 레닌이 정권을 탈취한 후, 국가기구를 이용해 폭력으로 정교(正教)와 신앙을 타격하고 세인들을 신과 멀어지게 했다.

1919년, 레닌은 낡은 사상의 선전을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종교에 대한 대규모 포위 토벌을 시작했다. 1922년, 레닌은 ‘단호하고 무자비하고 무조건적으로 멈추지 않고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귀중품, 특히 가장 부유한 수도원과 성당 및 사원의 귀중품을 전부 박탈하는 데 관한 결의’를 통과하도록 요구하고, “이 기회를 빌려 한 무리의 반동 종교계와 반동 자산계급의 대표 인물을 죽여야 하는데, 많을수록 좋다. 지금 바로 이런 사람들을 혼내줄 때이며, 그들이 몇십 년 안에 어떠한 반항도 감히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1] 한순간에 수많은 교회가 재산을 약탈당했고, 성당과 수도원이 폐쇄됐으며, 많은 성직자가 체포되고, 정교회 성직자 수천 명이 처형됐다.

레닌이 죽은 후 스탈린이 바통을 이어받아 1930년대에 극히 참혹한 대숙청을 시작했다. 공산당원을 제외한 지식인과 종교계 인사도 숙청 대상에 올랐다. 스탈린은 일찍이 전국에 ‘무신론 5개년 계획’을 시행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이 계획이 완성되는 시점에 마지막 성당이 폐쇄되고 마지막 신부가 사라지며 소련 대지는 ‘공산주의 무신론의 옥토’로 변해 더는 종교의 흔적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보수적으로 계산하더라도, 대숙청 과정에서 박해로 죽은 신부는 무려 4만 2000여 명에 달한다. 1939년에 이르러서는 소련 전체를 통틀어 정교회 성당 100여 개만이 대외에 개방됐는데 소련이 정권을 탈취하기 전에는 4만 400개가 있었다. 소련 전역에 정교회 성당과 수도원은 98%가 폐쇄됐고 천주교도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수난을 당했다. 이 시기에 더욱 많은 문화계 엘리트와 지식인이 실형을 선고받거나 굴라크(강제 수용소)로 이송되거나 총살당했다.

2차 대전 당시, 스탈린은 교회의 재력과 인력을 이용해 독일의 침공에 저항하려고 위선적으로 정교회와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멈추고 다시 종교를 회복시켰다. 그 배후에는 더욱 비열한 목적이 있었는데, 회복시킨 정교회와 천주교를 엄격하게 통제해 종교를 박해하는 도구로 삼았다.

구소련의 알렉세이 2세(Alexy II)는 1961년에 정교회 주교로 승진하고 1964년에는 대주교가 됐으며, 1990년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됐다. 소련이 해체된 후 공개된 KGB 기밀문서에는 그가 KGB에서 근무할 당시의 기밀 사항이 담겨 있다. 그 후 그도 소련 정부와 타협한 것을 인정했고, 또 그런 행동에 대해 참회한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하나의 사물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다른 것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 소련 통치 시절에, 자신뿐만 아니라 천만인의 운명을 짊어진 사람이나 조직이라면 비슷한 일을 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하느님뿐만 아니라 과거 교회의 묵인하에 타협과 침묵을 강요당해도 저항하지 못했거나 충성을 표시하도록 박해당해 고통을 받은 이들에게 양해와 이해를 구하며 기도한다.”[2] 종교는 이미 공산 사령의 통제하에 세뇌와 기만의 도구로 전락했다.

소련 공산당은 악마화한 종교를 자국 영토에만 국한하지 않고 계획적으로 그 마수를 세계로 뻗었다.

2) 중국 공산당의 전통문화 파괴와 종교 말살은 신과 인간의 연결고리를 끊었다

(1) 중국 공산당의 중화 전통문화 파괴

중국은 다른 국가들처럼 단일한 국가종교는 없지만, 중국인은 하나같이 신과 부처에 대해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는 장기적으로 종교 충돌이 있는 여타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현상이 있다. 중국에서 유교, 불교, 도교 심지어 서방 종교까지 모두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이런 신앙은 내포가 매우 깊은 중화 전통문화를 고루 다져 놓았다.

인류의 멸망을 초래한 대홍수 중에서도 중국은 온전하게 문명을 보존했다. 이후 중화민족은 계속 발전하면서 끊임없이 5천 년의 참된 역사 기록을 남겼다. 만방래조(萬邦來朝: 모든 나라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러 옴)의 눈부신 전성기를 만들어 ‘천조상국(天朝上國)’으로 존중받았고, 그 문화는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쳐 대중화(大中華) 문화권을 형성했다. 그리고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4대 발명품을 서역으로 전파함으로써 세계 문명을 이끌었고 유럽은 물론 세계 구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찬란한 문화와 신앙은 5천 년에 걸쳐 중국인의 혈맥에 녹아있는바, 공산 사령이 별의별 궁리를 해서 파괴하려는 표적이 됐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수천 년 다져 온 전통문화와 신앙을 단순한 기만과 유혹으로 포기하게 하고 서방에서 온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공은 끊임없는 정치 운동 중에서 사악한 술책을 총동원해 폭력과 학살을 시작으로 종교의 정수를 파괴하고 지식인을 박해했다. 또 사원 건축물과 문화 고적 및 서화 골동품 등 외형적인 것에서부터 중화 전통문화를 파괴해 신과 사람 간의 연결고리를 단절함으로써 전통문화를 말살하고, 더 나아가 인류를 파멸시키는 목적에 도달했다.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공산 사당(邪黨)은 또 계획적, 체계적으로 사악한 ‘당(黨) 문화’를 만들어 세인을 배양하고 훈련해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도구로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공산 사령을 따라 직접 살육에 가담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은 세상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세뇌 등 모든 수단을 어떻게 이용하면 세인들이 잘 따르고 순종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한 번, 또 한 번의 운동과 탄압 및 살육을 통해 그들은 이런 수단을 쓰는 데 갈수록 익숙해졌고, 인간 세상 최후의 선과 악의 대결에서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준비를 충분히 했다.

(2) 전통문화의 계승 기반을 무너뜨리다

중국 농촌의 지주와 유지 계층, 그리고 도시의 상인과 사대부 계층은 전통문화의 엘리트인 동시에 문화를 계승하는 사명을 지녔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정권 탈취 초기에 ‘토지 개혁(土改)’, ‘반혁명 진압(鎭反)’, ‘삼반(三反: 부패, 낭비, 관료주의 반대), ‘오반’(五反” 뇌물, 탈세, 국영 재산 강탈, 정부 계약 사기, 국가 경제 정보 누설 반대)’ 등 일련의 운동을 이용해 농촌에서 지주, 향신(鄉紳: 지방 유지)을 학살하고 도시에서는 자본가를 살해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사회 자산을 약탈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엘리트 계층을 무너뜨렸다.

그와 동시에, 중국 공산당은 대학교의 지식인을 대상으로 이른바 ‘학부 조정’을 통해 ‘사상 개조’운동을 진행했다. 그리고 유물주의와 무신론, 진화론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세뇌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적개심을 주입했다. 또한, 1950년대 ‘반(反)우파’ 운동을 통해 말을 듣지 않는 지식인을 전부 노동개조(勞動改造: 노동을 통한 개조)하기 위해 유배하고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보내 과거 발언권을 장악하고 사회 여론을 주도한 이런 ‘사대부’들을 멸시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문화의 중추가 사라짐에 따라 중국 공산당은 대대로 끊임없이 전승해 온 중화 전통문화를 끊어버렸다. 이후 젊은 세대는 가정, 학교, 사회, 이웃으로부터 은연중에 감화되는 교육과 훈도(薰陶: 덕으로써 인성과 도덕 따위를 가르치고 길러 선으로 나아가게 함)를 받을 수 없어 전통문화를 상실한 세대가 됐다.

‘반우파’ 운동 이후 가정, 학교 또는 사회를 막론하고 모두 독립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지만, 중공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필경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이 아직도 전통문화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문물 고적 등 전통 문화재를 어디서나 볼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 가치는 여전히 각종 예술 형식을 통해 전파됐다.

1966년 중국 공산당은 더욱 큰 규모로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운동, 즉 ‘문화대혁명’을 발동했다.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수립한 후 세뇌당한 학생들의 심리, 즉 사춘기에 소란을 일으키고 반항하는 심리를 이용했다. 문화대혁명 중에서 ‘파사구(破四舊: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습, 낡은 습관 타파)’라는 명분으로 중화 문화를 물질에서부터 정신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재난에 빠뜨렸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후 ‘파사구’의 사악한 불길은 중화 대지를 휩쓸었다. 사원, 도관, 불상과 명승 고적, 서화, 골동품은 거의 다 파손됐다. 이런 중화 문화의 정화(精華)는 수천 년 동안의 계승과 축적 과정을 거친 것인데, 일단 훼손되면 원상회복하기 어렵다.

문화대혁명 이전 베이징에는 오래된 사원이 500여 개나 있었고, 수천 개에 이르는 중국 곳곳의 도시마다 성벽, 사당, 사원, 문화 고적이 있었다. 땅을 한 자만 파도 근대 고적을 볼 수 있고 두 자, 석 자, 스무 자를 파면 역대 고적을 무수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의 ‘파사구’ 이후 거의 모든 것이 훼손됐다.

‘파사구’는 신도들이 기도하고 수련하는 장소와 고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건축물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바른 신앙과 천인합일의 전통 정념(正念)도 함께 훼손했다. 세인들은 아마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신과 무관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당신과 관련이 있든 없든 사람들은 이로써 신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됐다. 신의 보호를 잃게 됨으로써 위험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는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 밖에도 공산당은 인간과 신, 조상과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앞장서서 중화민족의 조상에게 악담을 퍼붓고 중화 전통문화를 비방하고 배척했다. 세계 각국은 보편적으로 그들의 위대한 선조와 군주를 숭배하고 전통을 소중히 여긴다. 같은 이치로 중국의 성철(聖哲)과 선현(先賢)들이 남겨놓은 찬란한 문화는 중국과 세계의 보귀한 자산으로서 당연이 후세의 추앙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과 파렴치한 문인들이 보기에는 중국 고대의 왕후장상(王侯將相), 재자가인(才子佳人) 중에는 변변한 인물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이와 같이 자기 민족의 조상을 모욕하는 것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다. 중국인은 공산 사당(邪黨)에 이끌려 신을 반대하고 조상을 능멸하고 문화를 파괴하면서 아주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3) 종교 박해

종교 신앙은 중화 전통문화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다. 세인들이 잘 알고 있는 도(道)·불(佛)·유(儒) 삼교는 수천 년 동안 중국 역사 속에서 서로 빛을 비추며 오랫동안 어울려 왔다. 많은 서양 종교들도 중국에 한 차례 널리 전파한 인연이 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후, 소련과 마찬가지로 한 편으로는 사상 분야에서 무신론을 선전하고 유신론을 공격했으며, 한 편으로는 일련의 정치 운동에서 고압과 폭력 수단을 이용해 종교를 억압하고 박해하고 제거했으며, 종교인들을 살해했다. 1999년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가 시작되면서 정교(正敎)와 신도들에 대한 박해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1949년 정권을 탈취한 후 중국 공산당은 대규모 종교 박해와 ‘회도문(會道門)’에 대한 단속에 착수했다. 중공은 대량의 성경과 기타 종교 유파의 많은 경서를 불태워 버렸다. 또한 ‘기독교, 천주교, 도교, 불교 등의 조직과 종파 구성원은 정부에 등록하는 한편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만약 기한 내에 등록하지 않았다가 조사해서 밝혀지면 반드시 엄벌에 처한다’고 요구했다. 1951년, 중공은 또 ‘회도문 활동을 계속하는 자는 사형 혹은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명문으로 선포했다. 불교 승려는 대부분 절에서 쫓겨나거나 환속해서 생산 노동을 했다. 천주교 외국인 신부도 다수가 감옥에 갔고 모진 고문을 당했다. 중국 신부도 감옥에 갇히고 수많은 신도가 사형 혹은 노동개조를 선고받았다. 기독교 목사와 신도들도 천주교 교도들과 똑같은 박해를 받았다.

1949년 후, 중국에 남아있던 중국 천주교 주교와 신부 5천여 명이 감금되거나 살해되고 마지막에는 수백 명밖에 남지 않았다. 외국인 신부 중 일부는 살해됐고 나머지는 전부 중국에서 쫓겨났다. 천주교도 만 1000여 명이 살해됐고 수많은 교도가 절차 없이 체포되거나 강제로 벌금형에 처해졌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초기 몇 년간 300만 명에 가까운 종교 신도와 종교단체 회원들이 붙잡히거나 살해됐다.

소련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당은 이른바 종교에 대한 지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 도교협회, 중국 불교협회 등 각 종파를 관리하는 기구를 설립했다. 천주교에 대해서는 그들이 임명하고 관리하는 '중국 천주교 애국회‘를 세웠다. 모든 종교협회는 모두 당의 의지에 따라 신도를 통제하고 사상 개조를 진행해야 하며, 동시에 그들을 이용해 중공 사령이 직접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한다. 바로 정교를 내부로부터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 불교도 가만두지 않았다. 1950년에 군대를 파견해 티벳을 점령한 후,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 불교에 심한 박해를 시작했다. 14세 달라이 라마는 1959년 티베트를 탈출해 인도로 망명했는데, 중국 공산당을 이를 ‘반란’으로 규정했다. 1962년 5월, 10세 판첸 라마는 중공 국무원에 ‘티베트의 전반적인 상황과 구체적인 상황 및 티베트를 중심으로 하는 장족 각 지역의 고충과 금후 희망과 요구에 관한 보고’를 제출했다. 그중에 대량의 사실을 열거해 장족문화, 특히 불교 신앙에 대한 중공의 파괴를 진술했다. “(중공은) 불상, 불경, 불탑 등을 파괴하는 거센 파도를 일으켜 수많은 불상, 불경, 불탑을 소각하고, 물속에 던져버리고, 땅에 던지고, 허물어버리고, 녹여버렸다. 사찰, 불당, 마니벽, 불탑에 미친 듯이 난입해 파괴하고, 불상 장식품과 불탑 안에 있던 수많은 귀중품을 훔쳐갔다. ... 게다가 그들은 ‘대장경’을 퇴비 원료로 사용하고 수많은 불화와 경서를 신발 만드는 원료로 사용하는 등 공공연히 종교를 모욕했다. 이것은 털끝만큼도 도리에 맞지 않는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후 수많은 라마가 강제로 환속당했고 진귀한 경서가 수없이 소각됐다. 1976년까지 티베트 경내에 있던 2700개의 사원이 겨우 8개만 남았다. 그중 1300여 년 전 당나라 시기에 지은, 티베트에서 가장 중요한 대소사(大昭寺)도 문화대혁명 기간에 전부 약탈당했다.

중화 고국, 도가 수련은 역사가 유구하다. 2500년 전 노자가 남긴 5천언 《도덕경》은 도가의 수련 경전이다. 《도덕경》은 동양 국가뿐만 아니라 서방의 많은 국가가 자국 문자로 번역했다. 하지만 문화혁명 중에 노자는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도덕경》은 ‘봉건 미신’이라고 불렸다.

유가의 핵심사상은 ‘인의예지신’이며 공자는 후세 사람들에게 인간의 도덕 규범을 남겨 놓았다. 문화대혁명 당시 베이징의 반란파들은 홍위병을 이끌고 취푸(曲阜: 공자의 고향)에 가서 마구 파괴하고, 고서를 소각하고 공자 묘비를 비롯한 역대 석비 1000개 가까이를 때려 부쉈다. 1974년 중공은 또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을 시작해 현실의 삶속에서 인간성을 수양하는 유가의 전통사상, 도덕적 기준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게 만들었다.

더욱 엄청난 비극은 1999년 7월, 전 중공 두목 장쩌민이 파룬따파(法輪大法) 및 ‘진선인(真善忍)을 신앙하는 파룬따파 수련자들에 대한 박해를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극악무도하게 대법 수련자의 장기를 강제로 적출해 이 천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수천 년의 중국 전통문화, 도덕 관념, 수련 신앙은 짧은 몇십 년 동안에 중공에 의해 거의 다 파괴됐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는 신을 믿지 않고 신을 저버리게 됐으며, 정신적으로 공허하고, 도덕이 파괴되고, 사회기풍이 날로 악화됐다.

2. 서방, 종교에 침투하고 종교를 타격하다

공산 사령은 공산 독재국가가 아닌 나라들의 종교 신앙을 파괴하는 데도 체계적인 배치를 했다. 공산 사령은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을 통해 종교 교류를 명분으로 이들 국가의 종교기구에 침투했는데, 주로 금전과 스파이를 이용해 그들의 정교 신앙을 변이시키거나 전통 정교를 직접 타격하고 전복했다. 심지어 직접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종교에 도입해 민중들이 공산주의에 의해 변이된 사교를 신봉하도록 했다.

1) 종교에 침투하다

다큐멘터리 <어젠다, 미국 잠식(Agenda: Grinding Down America)> 프로듀서 커티스 바우어스(Curtis Bowers)는 1953년 국회 증언에서, 매닝 존슨(Manning Johnson)이 정상급 공산당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폭로했다. 존슨은 “공산당이 종교를 파괴하는 하나의 지름길은 교회에 침투하는 것이다. 만약 인력이 부족하면 반드시 공산당 특수요원을 신학교 내부에 집중시킨다. 이런 학교에서는 아주 적은 인력으로 미래의 성직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략은 “사람들 관심의 초점을 정신에서 물질로 인도하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공산 사령은 확실히 이와 같이 실행했다. 예를 들어, 겉모습만 바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미국의 기독교회에 침투하기 위해 80~90년 전부터 미국의 신학교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변이된 신부와 목사를 교육해 은연중에 미국의 종교계에 영향을 주도록 했다.

불가리아의 역사학자 맘칠 메토디프(Momchil Metodiev)는 냉전시기 불가리아 공산당의 역사 자료를 대량으로 연구한 후, 동유럽 공산주의 진영의 정보 시스템과 공산당 종교 위원회가 긴밀하게 협력해 국제종교조직에 영향을 주고 침투했다는 사실을 밝혔다.[3]

세계적으로 소련과 동유럽 공산 진영에 대규모로 침투당한 종교조직은 단연 세계기독교회 연합회인데, 세계교회협의회, 세계기독교협회 혹은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라고도 부른다. 1948년에 창설된 WCC는 기독교 종파를 초월한 연합 조직이며, 회원은 기독교의 각종 주류 파벌의 교회가 포함된다. 이 조직의 취지는 세계교회 합일 운동을 촉진하는 것이다. WCC는 자신을 348개 글로벌 교회와 지역, 지역지부, 민족성과 지역성 교회를 구비한 단체이며, 통일, 공동 증언 및 기독교 봉사를 추구한다고 표현했다. WCC에 속한 기독교 교파의 신도는 약 5억 9천만 명이며, 약 150개국이 가입돼 있다. 따라서 WCC는 세계 종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WCC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냉전시기에 소련 및 그 부속 국가를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를 회원으로 받아들인 국제교회조직으로, 그들의 경제 지원을 받았다.

공산주의가 WCC에 침투한 중요한 ‘성과’는 1975년 구소련 정교회 메트로폴리탄 니코딤(Metropolitan Nikodim) 대주교가 WCC 회장으로 당선된 것이고, 또 다른 성과는 불가리아의 동유럽 공산주의 대리인 사베프(Sabev)가 1979년부터 1993년까지 WCC의 부총재(사무차장)로 장기 역임한 것이다. 역사학자 매토티브(Momchil Metodiev)는 1970년대에 니코딤이 KGB의 지시에 따라 침투 행동을 주도했으며, 불가리아의 스타라 자고라(Stara Zagora) 대주교 판크라티(Pankratii)는 불가리아의 이 행동에 협조했다고 지적했다.[4]

케임브리지대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앤드류(Christopher Andrew)는 공개된 1969년 KGB 기밀문서에 근거해, 냉전 시기 WCC의 중요한 소련 정교회 대표들이 비밀리에 KGB를 위해 일했고 WCC의 정책과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1989년에 공개된 KGB 기밀문서에 따르면, KGB의 배치로 WCC에 진입한 정교회 고위급 대표들이 성공적으로 소련 공산당의 침투 계획을 WCC가 채택하도록 했다. 그중 8개 조례는 WCC의 공동성명에 넣었고 3개 조례는 WCC의 통신에 사용되고 있다.[5] 이로써 정교회를 통한 소련 공산당의 WCC 침투 계획을 엿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소련 정부를 위해 일한 알렉세이 2세도 소련 정교회를 대표해 직접 WCC의 운영에 참여한 바 있다.

우리가 동유럽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교회에 침투해 교회를 조종했는지를 이해한다면, 왜 WCC가 1980년 1월에 회원국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연맹 - 애국 전선(Zimbabwe African National Union – Patriotic Front, ZANU-PF)에 자금을 지원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ZANU-PF는 선교사들을 살해하고 민항 여객기를 격추한 것으로 알려진 악명 높은 공산주의 게릴라 집단이다.

이밖에 WCC는 중국 공산당의 침투와 영향도 받았다. 중국기독교협회는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고 이용하는 종교 도구이다. 이 협회는 공산 중국의 유일한 대표로 WCC에 공식 가입했으며, 금전과 이익의 유혹에 넘어간 WCC는 중국 공산당에 무조건 따르며 아첨했다. WCC의 사무총장은 2018년 초에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기독교협회, 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국가종교사무관리국을 비롯한 공산당이 지배하는 여러 기독교 단체들을 만났다. 중국의 경우, 비공식 기독교 단체(지하교회)의 신도 수가 공식적인 단체보다 훨씬 더 많지만, WCC 대표단은 중국 공산당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비공식 기독교 단체와의 만남을 계획하지 않았다.

2) 종교를 타격하다

공산 사령은 서방에 전방위적으로 침투했다. 신을 비방하는 각종 변종 공산주의자들의 사상 행위도 모두 종교를 뒤흔들어 놓았다. 예를 들면 ‘정교(政敎)분리’, ‘정치적 올바름’ 등이 모두 정교(正敎)를 타격하고 파괴하는 데 사용됐다.

미국 건국의 근본은 신을 믿는 데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선서를 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신께 미국을 축복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신에게서 벗어나는 행동·사상·정책을 비평하거나 낙태와 동성애 등 신이 허락하지 않는 행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때, 미국의 공산주의자들이나 좌파 급진주의자들은 ‘정교분리’를 내세워 반격한다. 즉, ‘종교는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으로 신의 의지와 훈계 및 인간에 대한 단속을 배격한다.

수천 년 동안, 신은 줄곧 신을 믿는 세인들과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정교 신도들이 사회 도덕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상당히 크게 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만 신의 의지를 말할 수 있고, 교회 밖에서는 신이 정한 준칙, 즉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준칙을 위배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비판하거나 저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종교의 도덕적 기능을 완전히 상실함으로써 미국 사회의 도덕이 급격히 떨어지게 됐다.

최근 몇 년 동안 특별히 유행한 ‘정치적 올바름’이 극도로 영향을 미쳐 기독교를 주요 종교로 믿는 미국에서조차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이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비(非)기독교인들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고 일부 사람들이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공개 석상에서 자신의 신에 대한 신앙이나 기도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기 때문에 제지당할 수 있다. 사실상 모든 종교 신앙은 자신의 방식으로 신에 대한 공경을 표현할 수 있으며, 누가 누구를 차별하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정교 신앙과 전통 가치에 관련된 수업을 해서는 안 되고, 신의 창조론도 말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과학이 실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과학으로 실증하지 못하는 무신론, 진화론은 오히려 버젓이 학교에서 전수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신을 반대하고, 신을 배척하고, 신을 욕하고, 신을 비방하는 것은 모두 문제가 없으며 또 보호를 받는다.

문화, 교육, 예술, 법률 등 많은 분야에서 사령이 저지르는 종교 타격·침투·변이 행위는 상당히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후속편에서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

3. 공산 사령이 조작한 변이된 신학

지난 세기 전 세계 종교계는 공산주의 사조(思潮)에 따라 충격과 영향을 받은 데다 정교에 침입한 변종 성직자들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정교를 마귀로 변화시켜 제멋대로 해석했다. 그리하여 정교의 선지자가 전한 정법과 정교 경전이 왜곡돼 각종 변이된 신학 이론이 한 시기 유행했다. 특히 60년대 활발하게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혁명신학’, ‘희망의 신학’, ‘정치신학’ 등 많은 변종 신학 이론이 침투해 종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신부들은 지난 세기 유럽 신학교의 교육을 받아 공산주의 사조로 변이된 신(新)신학이론의 영향을 매우 깊게 받았다. ‘해방신학’은 20세기 60~8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매우 활발했는데, 주요 대표 인물은 페루의 신부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érrez)이다. 이 신학 이론은 직접 계급투쟁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을 종교 수련에 도입해 가난한 자가 마땅히 해방되는 것이 인류에 대한 신의 자비로 해석했다. 그래서 신도들에게 가난한 자가 평등한 지위를 얻도록 계급투쟁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으며, 여호와가 모세에게 유태인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게 한 것을 빌려 가난한 자를 해방해야 한다는 그들 기독교의 이론적 근거로 삼았다.

이렇듯 계급 투쟁을 강조하고 사회주의의 신흥 신학을 건립함으로써 쿠바 공산당 괴수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의 망동을 부추겼다. 전통 천주교가 이른바 신흥 학자들의 범람을 저지하긴 했지만, 2013년에 임명된 교황은 오히려 해방신학자 대표 인물인 구티에레스를 특별히 초청했다. 2015년 5월 12일에 주빈으로 바티칸의 뉴스 발표회에 출석해 해방신학에 대한 새 교황의 묵인과 지지를 표명했다.

‘해방신학’이 남미에 널리 퍼졌고 그 후에도 전 세계에 널리 퍼졌다. 세계 각지에 해방신학과 유사한 많은 신흥 신학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흑인신학, 부녀신학, 하느님의 죽음신학, 자유주의 신학, 심지어 동성애 동지를 제창하는 신학 등이다. 이런 변이된 신학은 세계 각지의 천주교, 기독교 등 정교 신앙을 아주 심하게 어지럽혔다.

지난 세기 70년대, 미국에서 악명 높은 인민사원(The Peoples Temple of the Disciples of Christ,약칭 Peoples Temple)의 교주는 스스로를 레닌의 환생이며 마르크스주의 신앙자라고 칭하면서,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의 가르침을 인민사원의 교의로 삼는다고 했다. 그가 미국에서 선교하는 목적은 바로 자신의 공산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표명했다. 그는 이 교파를 조사하고 고발한 미 하원의원 리오 라이언(Leo Ryan)를 살해한 후, 죄를 면하기 어려워지자 잔인하게 그의 신도들까지 강제해 집단 자살을 했다. 그는 또 함께 자살하지 않으려는 많은 신도까지 살해했는데, 최종적으로 총 9백여 명이 자살하거나 살해됐다. 정교를 먹칠하고 종교에 대한 세인들의 바른 믿음을 교란함으로써 세인들에게 극히 나쁜 영향을 미쳤다.

4. 종교 난맥상

1958년 출판한 <벌거벗은 공산주의자(The Naked Communist)>

공산주의가 미국을 파괴하는 45가지 목표를 열거했다. 충격적인 것은 그 중의 상당수가 이미 사실이 됐다는 것이다. 그중 27조는 이렇다. “교회에 침투해 ’사회의 종교’로 ‘천계(天啓)종교’를 대체하고 성경을 폄하하자.”[6] 오늘날 종교계를 둘러보면 특히 3대 원시종교인 기독교, 천주교, 유대교(합해서 천계종교라고 부름)는 공산 사령에 의해 변이되고 타격을 받아 이미 원래 종교의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변종이 된 공산주의 각종 이념으로 건립되거나 변형된 신(新)종파는 더욱 직접적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했다. 종교는 서양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지탱하는 중요한 초석이었지만, 이미 공산 사령에 의해 형편없이 파괴됐다.

오늘날 세계 여러 교회 안에서 종교의 탈을 쓴 많은 주교, 신부가 한편으로 변이된 신학 사상을 전파하고, 한편으로는 타락해 신도를 간음해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많은 신도들은 교회에 가는 것을 일종의 교양 활동 혹은 취미 활동으로 간주하면서 거기에서 사교 활동을 즐길 뿐 결코 참다운 수련을 하지 않았다. 종교는 내부에서부터 파괴된 결과, 사람들이 종교, 불·도·신에 대한 바른 믿음을 상실해 오히려 신앙을 포기하도록 했다. 만약 인간이 신을 믿지 않으면, 신도 더는 인간을 관장할 수 없게 돼 최후에는 인류 멸망의 결말을 보게 된다.

2017년 6월 29일, 호주 빅토리아 경찰국은 기자회견을 열고 “다수 원고인의 고발로 호주 조지 펠(George Pell) 추기경이 성범죄와 관련된 여러 가지 혐의로 기소됐다”고 밝혔다. 조지 펠은 1996년에 멜버른 대주교, 2003년에 추기경이 됐다. 2014년 7월, 프란치스코 교황(Pope Francis)은 조지 펠을 바티칸 시티 내의 모든 금융거래를 책임지고 감독하도록 파견했다. 바티칸 시티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조지 펠은 바티칸 서열 3위의 인물이었다.

2002년, 미국 신문 ‘보스턴 글로브(The Boston Globe)’의 탐사보도팀은 그해 1월 6일부터 12월 14일까지 신부의 아동 추행 사건에 관한 일련의 보도를 통해서, 천주교 신부가 미국에서 저지른 아동 성추행 범행을 폭로했다. 기자들은 조사를 거쳐, 과거 수십 년간 보스턴에서 무려 250명의 신부가 아동을 성추행한 일이 있었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교회는 사건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성직자를 대대적으로 물갈이했다. 이 교구(教區)에서 저 교구로 옮기면서 이런 성직자들은 또 새로운 교구에서 계속 아동을 성추행하는 악행을 저질러 더욱 많은 사람이 피해자가 됐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급속히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이어 아일랜드와 호주 등 다른 천주교 국가로 확산됐다. 다른 종파도 가톨릭 교회의 부패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세계 여론의 압박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어쩔 수 없이 바티칸에서 미국 추기경 대회를 열고 아동 성추행 범행을 시인했다. 동시에 교회 관리체제를 개혁하기로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아동을 성추행한 신부를 교회에서 추방했다. 마지막으로 추행범들은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갔으며, 교회는 이 아동학대 사건으로 20억 달러 상당의 벌금을 물게 됐다.

종교에서 종교를 빙자해 재물을 약탈하는 것은 더욱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각종 교회는 불·도·신을 신앙하는 신도들을 통해 제멋대로 재물을 빼앗고 횡령하면서 종교를 상업화했다. 개광(開光) 의식을 해도 돈을 받고 향불을 피워도 돈을 받았는데 설날 첫 향(頭炷香)을 피울 때는 10만 위안까지 받았다. 교회와 사찰은 점점 더 많아지고 휘황찬란해졌지만, 신에 대한 바른 믿음은 갈수록 약해졌고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행해 신의 요구에 도달한 신도는 점점 더 적어졌다. 많은 사찰과 교회는 악령, 난잡한 마귀가 집중한 곳으로 전락했다. 중국의 많은 사찰은 관광지로 변했고 승려는 임금을 받고 출근하며 주지승은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최근 이른바 중공 19대 회의보고 학습 열풍 중에서, 중국 불교협회 부회장은 ‘19대 정신 양성반’에 참가할 때 “19대 보고는 바로 당대(當代)의 불경으로서 나는 세 번이나 베껴 썼다”라고 하면서 “중국 공산당은 바로 현세의 부처이고 보살이며, 19대 보고는 바로 당대의 불경으로서 공산당 신앙의 빛이 빛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사람은 불교 신도에게 “경을 베껴 쓰는 방식을 본받아 그처럼 공손한 마음으로 19대 보고를 베껴 쓰면 베껴 쓸 때마다 체득과 수확이 있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하이난(海南) 남해 불교대학에서 이 보도를 발표한 후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켜 결국 이 보도를 삭제할 수밖에 없었지만, 인터넷에서 이 기사는 널리 퍼졌다. 이 사건은 오늘날 정치 승려가 이처럼 많으며, 불교협회는 근본적으로 수련단체가 아니며, 단지 중공의 통일전선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수천 년 이래 각지 천주교 주교는 모두 바티칸 교황청에서 직접 임명하거나 인정했다. 바티칸이 예전에 임명한 30여 명의 중국 지역 주교는 모두 중공의 인정을 받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바티칸과 중국의 수많은 성직자(특히 ‘지하 성직자’)도 중공이 임명한 ‘공산당’ 주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공의 끊임없는 협박과 유혹에 넘어간 바티칸의 새로운 교황은 놀랍게도 최근 중공과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중공이 임명한 주교를 교환 조건으로 인정하되 예전 교황청이 임명한 주교 자리를 중공이 임명한 주교에게 양보하도록 했고, 중공은 바티칸이 임명한 주교의 발언권을 인정하도록 바꾸었다.

교회는 신앙단체로서 목적은 신도들이 수련을 통해 천국으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신을 반대하는 사령과 인간 세상에서 거래를 해서 공산 사령의 배치와 임명을 주교가 따르게끔 허락하고, 중국의 수천만 천주교 신도들의 신앙을 공산 사령에게 관장하게 하면 하느님은 어떻게 보겠는가? 수천만 천주교 신도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산 사령은 온갖 궁리를 다 해 풍부한 동방 전통문화가 있는 나라에서 체계적으로 배치했다. 폭력 수단으로 전통문화를 강제로 파괴하고 정교를 훼멸했으며 사람들을 살육하는 동시에 세인들의 도덕을 더욱 파괴해 사람과 신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림으로써 철저하게 세인을 파멸시켰다. 서양과 세계 기타 지역에서 속임수를 써서 침투하는 수법으로 정교를 마귀로 변하게 해서 세인과 신도들을 혼란시켜 바른 믿음을 포기하고 신과 멀어지게 해 최후에 파멸되게 했다. 그 수법과 형식이 어떻게 다르든 간에 모두 최종 목적은 전 인류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9평>편집부 신서 <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열람)

*****

[1] V.M. 몰로토프, 『레닌전집』 제52권, 제372조, 중문 마르크스주의 문고, 346쪽.

[2] 「Patriarch Alexy II: – I Take upon Myself Responsibility for All that Happened,」 an interview of Patriarch Alexy II,Izvestia, No. 137,June 10, 1991, English translation from Nathaniel Davis, A Long Walk to Church: A Contemporary History of Russian Orthodoxy (Oxford: Westview Press, 1995), 89.

[3] Momchil Metodiev, Between Faith and Compromise: The Bulgarian Orthodox Church and the Communist State (1944-1989) (Sofia: Institute for Studies of the Recent Past/Ciela, 2010).

[4] 상동

[5] Christopher Andrew, 「KGB Foreign Intelligence from Brezhnev to the Coup,」 In Wesley K. Wark (ed), Espionage: Past, Present, Future? (London: Routledge, 1994), 52.

[6] W. Cleon Skousen, The Naked Communist (Salt Lake City: Izzard Ink Publishing, 1958, 2014), Chapter 12.

<9평>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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