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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출신 언론인 “가족 전원 행방불명”

기사승인 2018.12.16  16: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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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0일, 메릴랜드 주 버지니아 자택에서. 굴체흐라 호자. (Brendon Fallon/The Epoch Times)

중국 신장에서 자란 굴체흐라 호자는 어려서부터 춤과 음악을 좋아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그녀는 TV 진행자를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호자는 중국어와 위구르어로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신장 TV 최초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신장 시청자들에게 호자는 그야말로 유명인사였다.

2001년 유럽에서 휴가를 보내던 호자는 처음으로 신장 지역 시위에 대한 검열 안된 라디오 뉴스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그 후 호자는 신장으로 되돌아가는 대신 해외에서 위구르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언론의 자유가 없는 아시아 일부 지역에 정보를 제공하는 워싱턴 소재 방송국 자유아시아 방송(RFA)에 입사했다. 수많은 위구르 시청자들은 그녀의 정보 소식통이 되어 중국 공산당 정권에 박해당하는 위구르족 소식을 전해주었다.

호자가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서 위구르족이 겪는 고난을 집중 보도해 온 지도 벌써 17년이 흘렀다. 하지만 남동생을 포함한 25명의 일가친척이 박해당하고 있는 호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게 되리라고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호자는 “나보다 1년 반 늦게 태어난 남동생은 분명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매일 밤 꿈에 남동생이 나오는데 고통스러워 보인다. 이런 생이별에 마음이 너무나 아프지만, 남동생은 아마 나보다 더욱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하나뿐인 남동생 카이사르 케윰과의 좋은 추억이 많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학교에 다니며 한시도 떨어져 있는 법이 없었다. 호자는 “내가 아프면 동생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 가지 않으면 남동생도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며 남동생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호자와 케윰의 이름은 서로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데, ‘굴체흐라’는 “꽃을 든 사람”이라는 뜻이며 ‘카이사르’는 “사프란 꽃”을 의미한다.

RFA 언론인 굴체흐라 호자가 2001년 6월 17일 남동생 카이사르 케윰과 함께 찍은 사진 (굴체흐라 호자 제공)

호자가 RFA에 입사했을 때 케윰은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호자가 신장으로 복귀하지 않자 케윰의 인생이 큰 변화를 겪게된다. 잦은 경찰 조사로 학교생활이 힘들어진 케윰은 번역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호자는 “경찰이 케윰과 교제하는 여성들에게 찾아와 그의 가정환경에 대해 알고 있는지, 왜 굳이 문제에 휘말리려고 하는지 등을 묻는 바람에 두번이나 결혼이 무산되었다”고 덧붙였다.

케윰은 그동안 십여 차례 체포되었는데, 2017년 9월 28일 다시 체포되어 아직 수감 중이다.

케윰의 체포 사유가 호자로 인한 것이라는 경찰의 말을 어머니 키만굴 지크리가 전한 후 충격을 받은 그녀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체포 당시 겁에 질린 어머니가 경찰 측에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누나라는 사람이 RFA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체포 사유 아닌가?”였다.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은 2016년 이후 더욱 심해졌다. 인권단체 휴먼 라이트 워치에 따르면 약 100만 명의 위구르인이 공식 교정 시설인 다양한 미결수 수용시설이나 교도소에 구금되어있거나, 현 중국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 교육 캠프에 수용되어있다.

2017년 4월, 중국 공산당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반(反)극단주의 규제안’을 도입했다. 중국 및 국제사회 인권 NGO 네트워크인 ‘중국인권수호자(CHRD)’에 따르면, 해당 규제안은 극단주의 테러 위협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인식을 반영한다.

“이 규제책에 따르면 특정 할랄 음식을 소지하는 행위, 또는 수염을 길게 기르거나 니캅을 착용하는 행위, 자녀에게 ‘이슬람교 관련 함의’를 지닌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 국영 TV 프로그램 시청이나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를 거부하거나, 이슬람 음식 문화를 고수한다는 이유로 ‘재교육’ 캠프에 감금되거나 사상 교육을 강요받을 수 있다.

재교육 캠프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위배되는 특정 집단을 근절하기 위해 중국 정부 당국이 오랫동안 운영해오고 있는 관행이다. 독립적으로 조사한 전문가 18명이 작성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2018년 보고서는 소수 민족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중국의 재교육 캠프 내 고문 행위에 관한 믿을만한 보고를 인용했다. 심신 수련법인 파룬궁과 지하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보고가 있었다.

행방불명된 호자의 가족

지난 2월 3일, 호자는 이웃의 딸에게서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다. “소식 들었어?. 당신 부모님과 친인척 25명 모두가 같은 날 체포됐어”라는 전화였다.

호자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왜?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었고, 전화한 이는 ‘나도 어머니가 이야기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바로 집에 전화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사촌 등 30명에 가까운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응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눈물 바람으로 부엌 의자에 앉은 호자 뒤편으로 거실 탁자 위에 놓인 말린 과일과 쿠키, 초콜릿과 에켄 차이(위구르 차)가 보인다. 왼편에는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오른편에는 정장을 차려입고 넥타이를 맨 남동생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엄청난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전화 통화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로 인해 가족 모두가 체포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고, 가족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조차 모른다.”

RFA 저널리스트, 2006-2007년 굴체라 호자의 부모와 형제 (Courtesy: Gulchehra Hoja)

호자의 어머니 지크리는 지난 5월 10일 풀려났으나,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병원에 입원 중이던 77세 고령의 아버지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은 여전히 구금 중이다.

호자는 사건 이후 미국 전역의 다양한 포럼에 참석해 가족이 겪은 고초에 관해 이야기하기 사작했다. 지난 7월에는 의회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국제사면위원회가 호자의 가족 사례를 보도했고, 정의를 위한 호자의 투쟁은 전 세계 언론에 실렸다.

하지만 호자 내면의 고통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린 증손주 셋을 홀로 돌보고 있는 연세드신 이모도 걱정이다. 케밥을 만들 때마다 남동생 케윰 생각이 난다.

호자는 “케윰 사진은 책상 위에도 있지만 내 마음속에도 늘 지워지지 않고 존재한다. 너무 보고 싶다. 내 앞에 나타난다면 그를 꼭 안아주고 키스하며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호자의 버지니아 집에는 아버지가 보내준 돌과 함께 위구르 기념품으로 가득 찬 유리 진열장이 있다. 호자는 아버지가 늘 감시의 눈길이 머무는 서신 대신 돌을 보낸 것으로 생각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돌을 보내며 호자가 위구르 민족 및 문화와의 끈을 놓지 말라는 감동적이고 강력한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베누스 우파다야야(Venus Upadhayaya)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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