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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vs 현대...미국의 치열한 ‘낙태 전쟁’(1)

기사승인 2019.04.11  11: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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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낙태 지지 단체와 반대 단체들이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다.(KAREN BLEIER/AFP/ Images)

낙태 합법화를 둘러싼 미국의 ‘낙태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2016년 대선과 트럼프 당선 후 미국의 ‘생명 보호’를 부르짖는 낙태 반대 진영의 기세가 크게 높아진 가운데, ‘출산권 보호’를 외치는 낙태 지지 진영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월 22일, 트럼프 정부는 낙태 알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예: 미국 가족계획연맹)에 대한 지원을 제한하는 새 규정을 발표했다. 미국의 ‘보건 및 인적 서비스부’가 지난해 처음 제안한 이 규정은 기관, 조직 및 단체가 연방의 지원을 받으면 낙태 서비스를 알선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아울러 새로운 규칙은 낙태 알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조직 및 단체에 대한 연방 교부금을 금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리노이주는 '생식보건법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은 미출산 유아에 대한 여러 가지 보호 조치를 없앴다. 낙태 장소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비(非)의사 낙태와 자체 낙태를 허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 법안은 또한 의료보험 제공자에게 낙태를 위한 보험을 제공하도록 강요할 것이고, 교회나 다른 종교 조직도 동조할 것이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낙태를 임신 9개월까지 합법화할 수 있다. 제이 로버트 프리츠커 일리노이주 주지사는 일리노이주를 미국 전역에서 '낙태에 가장 우호적인 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2월 25일, 미국 연방 상원은 ‘낙태 생존자 보호법안’을 53 대 44로 부결시켰다. 이 법안은 벤 사히 네브래스카주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의 주도로 추진됐다. 낙태 시술을 한 의료진이 낙태에 실패했을 때 생존한 아기의 생명을 구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며, 최악의 경우 징역 5년, 심지어 1급 살인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트럼프는 상원 투표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상원 민주당이 지금 막 신생아 살해를 저지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투표를 했는데. 민주당의 낙태 입장은 극에 달해 신생아야 죽든 말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늘 투표는 미국 의회 역사상 가장 끔찍한 표결 중의 하나다. 한 가지 우리 모두가 공감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고한 아기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년여 만에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다방면에서 성과를 내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길로 가게 했다. 특히 가치관 측면에서 트럼프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 생명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

2018년 5월 22일 트럼프 연설에선 "생명 하나하나가 신성시되고, 아이 한명 한명이 하느님의 귀한 선물"이라고 했다. 미국이 전통적인 가치관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분명한 이념과 메시지를 세계에 던진 것이다.

오늘날 미국 사회와 유럽, 그리고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미 판이한 양대 진영으로 나뉘었다. 미국 양당 간의 싸움 이면에는 사실 두 가지 다른 가치관이 대치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전통과 현대, 이 두 가지 완전히 상반된 가치관 사이의 격렬한 대립이다.

미국 낙태 합법화 역사

19세기 미국 정부는 '낙태 반대' 입장을 취했다. 1803년, 영국은 처음으로 '낙태 금지법'을 통과시켜 낙태에 대한 더 많은 규제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영향을 받아 각 주에서도 잇따라 모방했다. 1849년에는 20개 주가 태동(임신 18주) 전 낙태를 경범죄로, 태동 후 낙태를 2급 살인으로 규정했다.

미국 의약협회는 1859년부터 임산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낙태를 비난하면서 낙태를 규제하는 법을 각 주에서 입법화하라고 촉구했다. 1910년이 되자 켄터키주를 제외한 미국의 모든 주는 낙태를 제한했다. 아울러 법 규정에 부합하는 특수한 경우라도 낙태 결정은 병원의 심사위원회에서 당사자가 아닌 의사의 판단에 따랐다.

1921년 뉴욕에서 ‘출산통제연맹’이 결성돼 피임과 낙태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 개업의들을 통한 낙태가 연간 80만 건이나 이뤄졌고 불법 낙태도 크게 늘었다. 이후 낙태 합법화가 급속히 확산됐다.

1959년, 입법기관은 성폭행이나 난륜에 의한 임신 또는 임산부의 심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 합법적인 병원에서 낙태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1965년, 코네티컷주 고등법원은 인공피임을 합법으로 인정하고 '개인적 권리'로 정의했다.

1967년, 콜로라도주는 가장 먼저 성폭행이나 난륜에 의한 임신 또는 임산부 생명을 구하기 위한 낙태 수술을 허용했다.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주가 그 뒤를 따랐다.

1970년, 하와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합법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최초의 주가 됐다. 다른 14개 주는 입법을 통해 일부 특별한 상황에서 낙태를 하는 데 동의했다.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과 프라이버시에 대해 내린 중요한 판례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고 프라이버시 권리를 보호받게 했다. 이 판결 후 주마다 다른 법률을 제정했는데, 단지 규제만 다를 뿐이다.

대법원 ‘로 대 웨이드’ 판결은 건강의 정의를 생리, 정서, 심리, 나이를 포함한 모든 요소로 확대했다. 이는 임산부가 어떤 이유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합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판결 이후 미국 대법원은 대다수 주의 반낙태법을 뒤집고 각 주에서 어떤 단계에서 법률로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에 관한 ‘3단계 표준’을 제정했다.

미국 대법원이 확립한 '3단계 표준'은 임신 초기에는 임산부가 결정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인정하고 있다. 임신 중기에는 임산부의 건강을 위해 각 주에서 낙태를 제한할 수 있지만, 금지할 수는 없다. 임신 후기에는 임산부의 생명에 위험이 없는 한 태아 보호를 위해 각 주에서 낙태를 입법으로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

1976년, 대법원은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의, 기혼 여성은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낙태할 수 있다는 제한을 없앴다.

19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태아 조직의 수집과 연구를 합법화하고 RU486 연구, 정부 보조 진료소에서 낙태 지도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명령을 내림에 따라 미 군병원도 낙태 시술을 시작했다.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이 낙태를 시행하는 진료소 밖에서 반낙태 단체가 항의하는 활동을 ‘진료소 출입 자유법’에 따라 금지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원래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에 어긋나는 조치다.

2000년, 대법원은 ‘네브래스카주의 부분 낙태 금지 법령’이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2003년 10월 21일, 의회는 임신 중기 3개월과 말기 3개월에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64 대 34표로 통과시켰고, 부시 대통령은 곧바로 법안에 서명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낙태를 추진하는 외국 기관에 대한 정부 지원을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전직 대통령의 금지령을 뒤집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임기 첫해 미국 전역 19개 주에서 낙태를 규제하는 법률 63건이 통과됐고, 트럼프 임기 첫 반년 동안 전미 각 주에서 낙태를 규제하는 규정이 431건 나왔다. 2018년 1분기에 37개 주에서 낙태 제한 규정 308개가 통과됐다. 이에 맞서 44개 주는 출산의 자율권을 보호하거나 확대하는 법규 700개를 통과시켰다.

(계속)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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