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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聖 장중경이 남긴 처방과 명언..."가죽이 없는데 털이 어디에 붙겠는가?"

기사승인 2019.05.10  16: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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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선성명인(1)

장중경(張仲景)이 저술한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은 전란을 거치면서 일부 유실됐고 지금은 《상한론》과 《금궤요략(金匱要略)》으로 정리됐다. 현재 이 책들은 널리 전해져 한의학의 성전으로 불린다. (NTD 영상캡처)

송나라 때 사마광이 저술한 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재주와 덕을 온전히 갖춘 사람을 성인이라 일컫는다”는 구절이 있다. 광활한 중국 문명의 역사를 돌아보면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선성(仙聖)이 배출돼 뛰어난 공적을 남겼다. 음악, 회화, 문학, 서예, 의약, 다도, 병법 등 도처에 신의 흔적이 보이며 선기(仙氣)가 가득하다. 5천 년 신전문화(神傳文化)는 신의 땅을 윤택하게 했고 온세상에 혜택을 주었다. 고대 선성들의 전기와 빼어난 성취는 전통 철학과 도덕 정신을 빛나게 하는 동시에 인심을 교화하고 후대를 계도하는 작용을 한다.

의학 대작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

장기(張機)는 자(字)가 중경(仲景)이며 동한 말기의 유명한 의사다. 210년경 《상한잡병론》 16권을 저술했다. ‘상한졸병론(傷寒卒病論)’이라고도 하는 이 위대한 책은 중의학 역사상 최초로 이(理), 법(法), 방(方), 약(藥)을 두루 갖춘 경전으로, 육경변증논치(六經辯證論治)의 원칙을 확립했다. 그뿐만 아니라 뛰어난 처방을 많이 기록해 역대 의가들은 물론이고 외국 의학계에서도 존경한다. 흔히들 ‘뭇 처방의 근본이자 원조(衆方之宗 羣方之祖)’라 부른다.

이 책은 후세에 《상한론(傷寒論)》과 《금궤요략(金匱要略)》으로 나뉘었다. 청나라 때의 명의 장지총(張志聰)은 “사서(四書)에 밝지 않으면 선비라 할 수 없고, 상한론을 제대로 모르면 의사라 할 수 없다”고 했다. 진(晋)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이 책을 정리하고 주석하거나 연구한 학자만 천 명이 넘는다. 이 책과 수록된 방제(方劑‧처방)는 한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몽골 등의 의학 발전에 영향을 끼치고 추동작용을 했다. 일본 의학회 ‘최고공훈상’을 수상한 한방의사 오츠카 케이세츠(大塚敬節)은 일찍이 “상한론은 치료학을 논술한 세계 최고의 고전 의서다”라고 했다.

장중경은 원나라와 명나라 때부터 ‘의성(醫聖)’으로 존중됐고 심지어 사찰에서 향불을 피워 공양할 정도였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발동한 문화대혁명 시기에 허난성 난양(南陽)에 있던 장중경의 무덤과 비석이 파괴됐다. 지금 장중경 기념관에 전시된 물품들은 한 차례 겁난을 거친 것들이다.

옛것을 부지런히 익혀 뛰어난 의술을 이루다

장중경은 소년 시절부터 편작을 흠모해 의학을 사랑했다. 그가 열 살 되던 해 같은 군(郡)의 명의 장백조(張伯祖)를 스승으로 모시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의학을 배웠다. 장중경은 이렇게 ‘근구고훈(勤求古訓‧부지런히 옛사람의 가르침을 구함)’하고 고대 의서를 자세히 연구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지식과 의술이 스승보다 낫다”고 했다. 그는 또 ‘박채중방(博採衆方‧처방을 널리 채집함)’하고 고금의 약재를 널리 수집했으며 민간의 다양한 치료법들까지 연구해 대량의 자료를 축적했다. 병을 진찰하고 학습할 때 그는 매번 ‘고교이구험(考校以求驗‧임상시험을 거쳐 바로잡음)’함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장중경의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는 상한론 서문에 잘 드러난다. “공자는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으뜸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다음이며, 많이 보고 들어 아는 것이 많은 자는 또 그다음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오래전부터 방술을 숭상했으니 이 말씀대로 해보련다.”

서진(西晋)시대 명의 황보밀은 《침구갑을경(鍼灸甲乙經)》 서문에서 장중경이 ‘건안칠자(建安七子‧중국 후한 건안 때의 유명한 시문가 7인)’의 한 사람인 왕찬(王粲)을 치료한 일화를 기록했다.

왕찬이 20대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중경이 그를 보고는 “그대는 병에 걸려 40이 되면 눈썹이 다 떨어질 것이고 또 반년이 지나면 죽을 것이다. 지금 오석탕(五石湯)을 복용하면 이 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네”라고 말했다. 왕찬이 이 말을 듣고는 불쾌하게 여겨 약을 먹지 않았다. 사흘 후 장중경이 그를 만나 약을 먹었는지 물었다. 왕찬이 이미 먹었노라고 거짓말을 했다. 장중경은 그가 약을 쓰지 않았음을 간파하고는 말했다. “그대는 왜 자신의 생명을 소홀히하는가?”라고 말했다. 왕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0년 후 정말로 그의 눈썹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180일 후 사망했다.

장중경은 이처럼 20년 후의 질병과 그 세부 증상까지 예견했고, 심지어 그 시간까지도 정확히 맞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또 각종 질병을 없앨 수 있는 묘방(妙方)을 제공했다. 애석한 것은 환자가 그의 진단을 따르지 않아 결국 의성(醫聖)의 예언을 사실로 입증시켰다는 점이다. 중국 전통의학은 아주 절묘하고 비범하며 천인합일‧음양오행‧신통력 등 여러 가지 현기(玄機)를 담고 있는바, 이는 현대의학이 절대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후세인을 일깨운 《상한론)》 서문

장중경은 진단의 원리와 처방뿐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철리(哲理)도 남겨주었다.

상한론 서문에는 “무릇 하늘이 오행을 펼쳐 만물을 운행함에 사람은 오상(五常)을 받아 오장이 있으며, 경(經)‧락(絡)‧부(府)‧유(俞)와 음양이 만나고 통함이 현묘하고 심오해 그 변화를 다 알기 어렵다. 재주가 높고 지식이 빼어나지 않고서야 어찌 그 이치를 탐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장중경은 또 “괴이하게도 지금 세상의 선비들은 신의(神醫)의 약을 보존하지 않고 의술도 제대로 궁구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위로는 임금과 부모님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빈천한 이들의 고통을 구제하지 못하며, 그 가운데서 자신의 몸도 보전하고 양생할 줄 모른다. 오직 영화와 권세만을 좇아 권력자에게 빌붙고 명리를 구하기에 급급하다. 말단을 숭상하되 근본에는 소홀하고, 겉은 화려하되 안은 초췌하다. 가죽이 없으면 털이 제대로 붙어 있겠는가?”라고 했다.

장중경은 확실히 성인이다. 그는 의학을 논술할 때도 인간의 도리를 천명했다. 그는 당시 지식층이 의약을 중시하지 않고 의술도 애써 연구하지 않은 채 오히려 영화와 권세를 좇아 권문세가를 우러러보며 명리를 유일하게 중요한 것으로 여김으로써 결국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쇠잔하고 됐다고 지적했다.

가죽이 없는데 털이 어디에 붙겠는가?

이 문제는 오늘날의 중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무신론과 투쟁철학의 작용하에서 사람들은 전통 도덕과 조상들이 남겨준 가르침과 문화, 그리고 기술의 정화(精華)를 포기한 채 앞 다퉈 근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쫓아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

1900년 전의 《상한론)》은 중국과 아시아의 의학에 새로운 국면을 펼쳐 수많은 생명을 구제했다. 오늘날은 장중경의 고향에서조차 수십 년에 걸친 공산당의 ‘전통 파괴’ 운동으로 전통 중의학의 정수가 거의 다 실전됐다. 현대사회의 중국인들은 대부분 무신론에 철저히 세뇌돼 신이나 신통(神通)을 믿지 않으며 천도(天道)와 오행에 순응하는 중의학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여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세제인(救世濟人)의 기본을 망각한 파렴치한 의사와 가짜 약이 범람하는데, 심지어 가짜 백신으로 많은 인명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이 덕이 없는데 어찌 어진 마음과 어진 의술, 좋은 약을 찾을 수 있겠는가.

중화의 자손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뛰어난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평범한 삶을 살든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하든 사람은 누구나 전통적 가치관에서 무궁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순박하게 진리를 추구하고 겸허하게 자신을 반성하는 인생은 반드시 풍요롭고 즐거울 것이며, 그런 사회 역시 번영을 누리고 재앙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다.

글/ 위인(兪音)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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