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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포토] 30년 만에 깨어나는 진실...'톈안먼 사건' 기록사진 공개②

기사승인 2019.05.20  17: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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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광장에 모여 있는 베이징 대학교 학생들. (류젠 제공)

1989년 봄, 수도 베이징에서 시작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애국 학생 '민주화운동'이 중국 전역으로 번졌다. 모든 과정에 참여한 베이징의 한 대학생이 이 역사적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학생과 시민들의 애국 열정 및 중국 공산당의 잔인한 '6.4 대학살'을 증명했다.

중국 공산당은 지금까지도 진상을 봉쇄하고 학생들의 평화 시위를 ‘반혁명 폭란(暴亂)’으로 몰아붙이고 있으며, 계엄군의 총기 난사 사실도 부인하고 있다.

당시 19세 학생이었던 류젠(劉建)은 “역사는 지울 수 없다! 어떤 정부도 역사를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중국인으로서, 또한 산증인으로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밝히고 후대에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고 했다. 몇 년 전 해외로 이주한 그는 최근에서야 자신이 중국 공산당에 세뇌됐음을 깨닫고 중국 공산당의 거짓말과 박해를 폭로하기로 결심했다.

최근 류젠은 30년 동안 묻어두었던 '톈안먼 사건' 기록사진 2천 장을 공개하며, 그 발표 권한을 에포크타임스와 신탕런(NTD)에 위임했다. 다음은 그중 일부다.

(1편에서 계속)

베이징 각 대학 학생들의 시위행진과 청원서 제출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세상을 떠나자 베이징 각 대학의 일부 학생이 톈안먼 광장에 모여 후야오방을 추모했다. 또한 그들은 ‘자유민주’와 관리들의 재산 공개를 요구하는 등 7가지 항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4월 22일, 중국 당국은 인민대회당에서 후야오방 추모식을 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사람과 차량의 톈안먼 주변 진입을 막기 위해 교통통제를 실시했다.

추모식 전날인 4월 21일 저녁, 베이징 20여 개 대학의 수많은 학생이 시위행진을 하며 각 학교에서 톈안먼 광장으로 들어갔고, 밤을 지새우며 추모식을 기다렸다.

톈안먼 사태 당시, 베이징 대학 학생들의 시위행진 모습. (류젠 제공)
톈안먼 사태 당시, 베이징 대학 학생들의 시위행진 모습. (류젠 제공)
톈안먼 사태 당시, 베이징 대학 학생들의 시위행진 모습. (류젠 제공)

류젠이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학생들이 행진할 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걸을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또한 점점 더 많은 시민이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러 거리로 나왔고 학생들의 애국운동에 동참했어요. 일부 도로 구간은 발 디딜 곳을 찾기도 어려워 나무나 담장, 도로 표지판 위에 올라간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는 또 “경찰도 아예 없었어요. 모두가 학생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손을 맞잡고 걷도록 길을 터줬어요. 도둑도, 범죄도 없었고, 모두가 학생들을 지지했지요. 또한 마실 것, 먹을 것, 밤에 입을 따뜻한 옷가지 등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죄다 제공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톈안먼 사태 당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일부는 나무나 담장, 교통 표지판 위에 올라가 있다. (류젠 제공)
톈안먼 사태 당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일부는 나무나 담장, 교통 표지판 위에 올라가 있다. (류젠 제공)
톈안먼 사태 당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일부는 나무나 담장, 교통 표지판 위에 올라가 있다. (류젠 제공)

후야오방 추모와 학생들의 청원

4월 22일, 중국 당국은 인민대회당에서 후야오방 추모식을 거행했다. 톈안먼 광장에 모인 수많은 학생은 ‘학생 대표가 추모식에 참석해 조의를 표하고 영구차가 광장을 한 바퀴 돌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일부 학생은 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인민대회당 계단에 무릎을 꿇었다. 낮 12시, 장즈융(張智勇), 궈하이펑(郭海峰), 저우융쥔(周勇軍) 등 학생 대표 세 명이 대회당 동문 계단에 45분간 무릎을 꿇고 청원서를 전달하려 했다.

후야오방을 추모하는 학생들. (류젠 제공)
톈안먼 광장에 모여 있는 학생들. (류젠 제공)
톈안먼 광장에 모여 있는 학생들. (류젠 제공)
톈안먼 광장에 모여 있는 학생들. (류젠 제공)

그러나 학생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마침내 학생들은 격분했다.

4월 23일, 베이징 대학교 학생자치연합회인 ‘가오쯔롄(高自聯)’이 결성됐다. 베이징 정법대 학생 저우융쥔이 초대회장을 맡았고 왕단(王丹), 우얼카이시(吾爾開希)가 상무위원을 맡았다.

4월 24일, 베이징 38개 대학 학생 6만여 명은 베이징 당국이 학생들의 청원을 무시하고 4월 20일 신화먼(新華門)에서 군경이 학생들을 다치게 한 데 대한 항의로 일제히 수업을 거부했다.

에포크타임스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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