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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7세의 이희호 여사 별세…민주화 투사로, 평화 전도사로

기사승인 2019.06.11  14: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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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영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뉴시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1922~2019) 여사가 10일 오후 11시 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향년 9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청년 시절 해방을 맞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역사를 고스란히 겪으며, 국모의 자리까지 올랐다.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부모 아래 기독교 모태 신앙 속에서 자란 고인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신에 대한 믿음으로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충남 서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배움의 뜻을 이루지 못한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고인은 다시 상경해 이화여고∙이화여대 전신인 이화여자고등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에 차례로 진학했다.

일제 강점 말기의 혼란 속에서 2년 만에 대학을 강제 졸업하고, 해방 후 다시 배움의 길을 찾아 1946년 서울대 사범대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기독교 청년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여성운동을 시작해 여성들의 인권회복 운동에 남다른 열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1950년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을 맞아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 김대중을 만나게 된다.

당시 김대중은 전처를 잃고, 어린 두 아들과 심장병을 앓는 여동생, 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다. 고인은 박정희 군사정권에 맞서 힘 없는 야당 정치인 김대중을 남편으로 맞아들인 데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1962년 결혼과 동시에 길고 긴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후 국외 망명을 떠난 남편에게 고인은 “한국을 대표해 더 강한 투쟁을 하라”고 독려했을뿐, 한번도 안전한 길을 찾아 민주화 투쟁을 중단하라고 말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은 남편과 함께 기나긴 역경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승리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다. 그녀를 따라다니던 ‘여성인권운동가’란 수식어에 걸맞게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여성가족부가 만들어졌다.

2009년 8월 남편을 먼저 보내며, “남편이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서울시청 앞 노제에서 힘주어 말했었다.

이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직을 역임한 고인은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남편이 해 오던 일을 이어갔다. 고인은 사회문제에 눈뜬 여성 운동가,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고생을 헤쳐나온 종교인, 남편과 함께 불굴의 의지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투사였다고 세인들은 입을 모은다.

고인이 살아온 일생은 한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의 공인으로서 그녀의 사회활동이 어떻게 평가받을 지 후대에 더욱 선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5일장으로 치러지는 고인에 대한 조문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서 11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은구슬 기자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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